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책 읽어드립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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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햄릿을 읽고 있다. 처음 읽었던 책은 동화로 각색한 책이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읽었던 책은 희곡이었고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햄릿을 그렇게 여러 번 읽었다. 햄릿을 유독 좋아해서 그랬던 건 아니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해서 대부분의 작품들을 자주 읽어왔는데 특히 햄릿을 가장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영화로도 몇 번이나 보았고... 그랬던 햄릿을 또 읽었다. 백 권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한 권을 백번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여기는 평소의 생각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스타북스에서 나온 햄릿의 겉표지에는 오필리아가 꽃다발을 손에 쥐고 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이 실려있다. 햄릿의 비극보다 오필리아의 죽음이 더 가슴 아팠던 때도 있었는데... 그것도 모두 결국에는 햄릿의 비극이지만.

햄릿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안 읽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줄거리는 생략하기로 하고, 나는 이번에 읽을 땐 각 등장인물들에게 집중해서 읽어보려 했는데 내가 햄릿을 읽고 기억할 때 내 머릿속에서 각색을 하는 건지 내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갖고 있던 느낌들이 또 달라졌다. 생각해보니 읽을 때마다 그러는 것 같다. 읽는 내 감정과 상황과 느낌과 나이에 따라 이해를 다르게 하고 이입을 다르게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님 기억 속에서 오류가 나는 것인지...

유령이 되어 떠도는 햄릿의 아버지가 일단 가장 불쌍했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형을 독살하고 형수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클로디어스는 정상참작의 여지 없이 악인이었고 남편이 죽은 후 시동생과 결혼한 왕비 거트루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한 불쌍한 여인이었으며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이 햄릿 왕자라는 것을 알고 미쳐서 죽어버린 오필리아는 너무나 가여웠으나 또한 그만큼 나약하기 짝이 없게 보였더랬다. 나머지, 햄릿의 친구나 시종들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 이해했고 레어티스는 굳이 그랬어야 했나 하고 생각했으며 오필리아와 레어티스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의 죽음은 참으로 억울하고 허무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햄릿. 그의 우유부단함, 깊은 고뇌와 번민, 미치광이 행세 등은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동정하면서도 몹시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다른 생각들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들 모두가 완벽한 선인도 완전한 악인도 아니더라는 느낌. 각자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런 선택밖에는 할 수가 없었냐는 아쉬움. 이 짧은 희곡 한 편에 이렇게 인간의 심리와 적나라한 내면을 보여주다니 하는 그런 느낌들이 뒤섞였다고 해야 하려나.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설명하는 소설 형식이 아니라 그들의 대사를 통해 생각을 직접 듣다(읽다) 보니 더 인물들의 성격이 부각되고 그들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어려서 이 책을 읽었을 때엔 이들의 대사를 읽으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세상에 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대사로 주로 표현해야 하는 희곡의 특성상 생각을 말로 다 쏟아내는 과정이 주는 당혹감을 넘어 재미와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극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대사와 심리묘사에서 특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인간의 욕망과 복수, 음모와 살인을 담은 이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 숨기고 있는 인간 내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 하여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지만.

왕비 거트루드와 오필리아의 캐릭터와 햄릿이 그 여인들을 바라보는 입장과 관점은 400년도 더 이전의 희곡이므로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그러나 햄릿의 원망과 비난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했고...

가장 이해 안 되는 게 오필리아의 죽음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이해가 되는 대목이 오필리아의 죽음이면서도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가장 많이 남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 그런 상황에서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었겠어 그렇지만 그러지 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자꾸 생각나는 클로디어스가 기도하는 장면. 온갖 나쁜 짓은 다 해 놓고 기도를 한단 말이지?! 그 모습을 보며 그 순간은 삼촌을 죽이는 것을 보류하는 햄릿도 기억에 깊게 남는다. 회개 기도하다가 죽임을 당해 삼촌이 천국 갈까 봐 못 죽이는 그 장면.

햄릿은 비극이 틀림없지만 읽는 내내 너무나 재미가 있다. 멀리서 보면 코미디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 이것도 그런 맥락인가.

끝으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와 같은 명대사 말고 폴로니어스가 아들 레어티스에게 했던 당부의 말을 옮겨 적어볼까 한다. 

[p.38-39 속마음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 것이며, 옳지 못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마라. 친구는 사귀되 잡스러워선 안 되고 한 번 사귄 좋은 친구는 마음속에 쇠고리로 단단히 걸어 두어라. 하지만 잘난 체하는 풋병아리들과 악수나 하다가는 손바닥만 두꺼워진다. 싸움을 하지 않도록 해야. 그러나 일단 하게 되면 상대방이 앞으로 너를 조심하도록 철저히 싸워라. 누구의 말이나 귀를 기울이되 네 의견은 말하지 마라. 즉,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판단을 삼가라는 말이다. 옷차림에는 지갑이 허락하는 데까지 돈을 써도 좋지만 요란하게 치장하지는 말아라. 값지되 번쩍거리지 않는 옷을 입도록 해라. 옷은 인품을 나타낸다. 프랑스의 상류계급 인사들은 이 방면에 세련된 눈을 지니고 있단다.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 주지도 말아라. 빌려주면 돈과 사람을 잃고 빌리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디어진다. 무엇보다도 네 자신에게 성실하여라. 그러면 밤이 낮은 따르듯 자연히 남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는 법이다...]

햄릿 속 인물탐구나 대사 연구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내용의 흐름과 상관없이 기억에 남는 게 많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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