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잘 지내는 법 - 불안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강력한 자극이다
크리스 코트먼 외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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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경기관은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한다."(p.59) 과도한 불안 속에서 압도당한 채 살아가는 나에게 일상은 사사건건 걱정거리이고 그래서 세상은 너무나 위험하며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실제로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느끼는 불안만큼 무서운 일만 벌어지는 일상이 아닌데도 나는 불안한 현실과 내가 걱정하며 상상하다 더 키운 불안으로 종종 두통과 소화불량 배탈을 앓는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은 전적으로 자의적이다"(p.57) "네 생각에 일일이 귀 기울이지 마라"(p.73)와 같이 공동 저자 세 명이 정리한 불안에 관한 것 외에도 내게 필요하고 내가 염두에 두고 생활하면 좋을 것 같은 조언이 많아 메모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뜻밖에 무척 재밌었다.

2005년 여름 시카고에 도착했던 날, 도착과 동시에 짐을 풀기도 전에 학교 관계자로부터 두어시간 동안 내내 들은 얘기는 ​"우리가 살게 될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시장보러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내리다 총에 맞았다거나, 길을 걸어다니다 총에 맞았다거나, 은행에 다녀오는 길에 총에 맞았다거나, 주유를 하러 내렸다가 변을 당했다거나, 학교 안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총에 맞았다거나, 공원에 앉아 있다가 벽돌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거나 하는 무수한 사례들을 줄줄 나열하며 우리에게 열쇠와 호루라기가 연결된 목걸이를 나눠 주었다. 목에 걸고 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힘껏 불라며. 그 뿐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보면 직사각형 모양의 기다란 하얀색 부스가 곳곳에 있는데 거기에 버튼이 있다고 했다. 전화도 있었던가? 암튼 누군가가 위협하거나 쫓아오는 걸 느낄 땐 그 버튼을 누르고 빠르게 도망을 가라고 했다. 그 버튼만 누르면 주변에 있는 경찰들에게 자동으로 연락이 가게 되어 있어서 그 주변 순찰차들이 몇 분 이내에 그곳으로 몰려들거라고.

그때만해도 나는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뭐 그렇게나 위험하겠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유모차에 아이를 앉히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인도가 차도만큼 넓은데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다람쥐와 토끼가 나와서 놀고 있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평화로웠고 가끔 사슴도 있었고 아름드리 나무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총 맞아 죽을까봐 아무도 나오지 못하고 살다니 너무 불쌍해 '하고 생각하며 다녔다. 간간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를 끌고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그 개들이 심상찮았다. 애완견이라기엔 하나같이 맹견이었던 것이다. 일어서면 키가 나보다도 클 그런 덩치의 사나운 개들. '저렇게 무서운 개를 예쁘다고 키우는 건가?' 처음엔 멋모르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 개들은 그 주인들이 총 대신 데리고 다닌 이를테면 호신견이었다는 사실을. 여하튼 그렇게나 위험하다는데 그리고 실제로 밤에 뉴스를 켜면 그날 총맞은 사람들의 소식이 계속 나오는 그런 곳이었지만 나는 거기서 살던 5년 반 동안 무사히 아무일 없이 잘 살다 왔다. 그러나 불안이 학습되었는지 나는 언제나 "조심해"를 달고 사는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어린 아이 셋을 키워야 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 불안증은 이렇게 주로 안전에 관련된 것들이 주를 이룬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최악의 상황을 너무나 현실처럼 인식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건 잘 해결이 되지 않았다.

친구도 못믿고, 친구 아빠도 못 믿고, 아빠 친구도 못 믿고, 심지어 아빠도 못 믿고, 낯선 사람은 위험하고, 낯익은 사람도 위험하고, 새엄마도 위험하고, 친엄마도 위험하고​... 이런 세상에서 배를 타도 무섭고, 비행기를 타도 무섭고, 차를 타도 무섭고, 길을 걷는 것도 무섭고, 세상 무서운 것 천지인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 불안은 내 삶을 제한한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과도한 불안 속에 있다는 걸 잘 몰랐다. 세상이 험하므로 누구나 나처럼 여기면서도 극복하고 사는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과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 불안을 성장으로 바꾸어가야 할 필요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위협이 되는 어떤 자극(들)이 없으면 우리는 성장하지 못한다."(p.44) "성장은 시련을 성공적으로 이겨냈을 때 생기는 부산물이다. 시련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따라서 불안은 성장의 필수 요소다."(p.44)

크리스 코트먼, 해롤드 시니츠키, 로리-앤 오코너 이 세 명의 심리학자가 오랜 임상심리를 통해 연구한 사례와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적어낸 책이다. 불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불안이 삶을 어떻게 자극하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들려준다. 걱정, 두려움, 초조함, 공황, 강박증,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불안은 에너지이며 누구나 그 에너지를 성장 자극으로 만들 수 있다고 불안이라는 괴물은 내가 허락하는 것 이상의 이빨은 없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불안을 극복하는 법이나 떨치는 법이 아니라 불안과 잘 지내는 법인가 보다. 불안에 대처하는 21가지 기술과 전문가와 함께 하는 6가지 고급 기술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해하기 쉽고 따라하기에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므로 불안이 자신의 삶을 압도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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