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01년 9~10월 - 통권 제60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2년 전 나는 우연히 <녹색평론>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요즘 보기 드물게 재생지를 고집스레 사용하는 이 격월간지는 표지의 촌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이 내용도 즈런즈런하고 고리타분해 시대착오적이고 허황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고르게 잘사는 사회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웠고 소비자본주의와 산업사회가 인류의 삶의 체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우쳤고 농사 짓고 사는 삶이 구질구질하고 패배적 삶이 아닌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꿀 대안적 삶,근본적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채식의 실천이 지구환경보존과 빈곤타파, 인간성회복의 유효한 방법임을 어설프게나마 배웠다.

내가 위의 사실을 배우고,깨치고,알았다고 하는 것은 물론 어휘력 가난한 표현의 편의일 뿐...내 삶으로 육화했다는 것은 아니다. 성기고, 넓게, 얕은 인식을 했다는 것이 바르겠다.

그러나 녹평은 어떨땐 나를 참 불편하게 한다. 김종철 교수가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산업사회와 인간불평등의 한 상징으로 자동차를 지목하면 내 마음은 도무지 편하지가 않다. 가까운 장래에 내가 자동차를 타지 않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기술 문명과 인터넷, 정보화에 회의적인 김종철 교수의 주장은 ....비록 그 말단 가지끝에 달려 허적거리지만 나를 무척 난처하게 하기도 한다. 또한 내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자족적 삶을 누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철 교수가 환경과 문명을 보는 생각의 틀을 바꿀 것을 요구하면 나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보며 곤혹스러워한다. 내 지식의 짧음과 감성의 메마름은 그 손길을 쫒아 가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굳이 이런 불편함과 곤혹감을 감내하면서도 녹평을 읽는 이유는 녹평은 단순한 환경보호를 외치는 전도서가 아니라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는 책이기 때문이다.

녹평을 읽은 후의 내 삶이 피상적으로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밥 먹고, 똥눟고, 일하고 그리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했나보다. 어떤 밥을 먹고, 어떤 똥을 눟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을 온종일, 온생각 다해서 고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고민들을 턱 놓고 무력하게 살고 싶지는 않은 걸 보면......만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지금 내가 단순하고 가난하고 소박하고 느린 삶을 말하는 것을 보면 배를 잡고 웃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어릴때 부터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며 내 삶의 사이클은 왜 이리 단순하고 느린지 스스로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거리는 남기자....선택한 가난과 강요된 빈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에도 흔들림의 추는 선택한 가난에 조금 더 기울어야 하지 않겟는가 하는 것이 내 작은 믿음이다. 선택한 가난,선택한 가난, 선택한 가난.......... 녹평을 읽으면서 기쁜일 하나 더....좋은 인생의 길 벗을 만났다는 것....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내 삶에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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