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 밤의 일기
조제프 퐁튀스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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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신파적인 요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책을 한 권 추천받았다. 프랑스 소설 <라인: 밤의 일기>. 제목만 듣고는 낭만적이고 달콤할 것만 같은 그런 소설을 떠올렸다. 프랑스 소설이니 라인은 라인강의 라인, 밤의 일기는 낭만적인 달빛과 연관지어 생각해 버렸다. 표지를 보자마자 아니구나, 했다. ‘라인은 공장의 생산 라인, ‘밤의 일기는 공장 노동자가 일과를 마친 후 써내려간 일기였다. 작가 자신이 실제로 공장에서 2년 넘게 일하며 쓴 일기를 소설로 풀어 낸 자전적인 책이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하염없이 흘러가는 라인 위에 때맞춰 물건을 척척 줄지어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 일. 나는 분명히 신파를 좋아하지 않는다 말했는데, ‘노동’, ‘공장’, ‘밤의 일기라니, 너무나 고단하고 구슬프지 않은가?

 

두어 시간 남짓, 컨베이어 벨트 리듬을 타고 흘러가듯 그의 일기를 모두 읽었다. 하나도 구슬프지 않았다. 고단할지언정 전혀 구슬프지 않다. 어쩌면 은연중에 구슬픈 신파를 신경 쓰며 기대한 건 나였던 것 같다. 공장 노동자의 삶은 비참하고 구슬플 것이라는 야비한(?) 기대를 가지며 울 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고 할까. 연민이라는 조미료를 뿌려대며 삼류 애환’, ‘억지 감동을 기대한 건 결국 내가 아닌가. 시간에 치이고 삶의 무게에 짓눌릴지언정, 그것을 살아내는 그 사람의 삶은 전혀 구슬프지 않구나. 어쩌면 나는 한 번도 살아 볼 일이 없는 삶, 그럼에도 삶에서 오는 고단함이라는 교집합 덕분에 꼭 이질적이지만은 않은 어느 삶을 엿보았다. 상쾌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일기에는 덤덤함이 주는 개운한 느낌이 있다. 하루를 살아내고, 돌아와 기록하고, 잠들고,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덤덤함.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구가 마음에 들어서 나도 힘들 때마다 읊조리던 때가 있다. 바람은 좋은 위로가 되며 원동력이 되어 주니까. 아아, 그런데 주인공이 일과를 보내는 곳은 창문 하나 없는, 그러니까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장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일기에 답이 있다. 노래를 하면 된다. 노래는 머릿속에 리듬과 운율로 바람을 만들어 주니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들을 떠올리며, 자기만의 농담과 이야기를 만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을 지나 보낸다. 새우를 분류하고, 두부의 간수를 빼고, 냉동 생선 덩어리를 분류하고, 거대한 고깃덩이를 떠미는 사이사이, 그의 마음속에 노래가 있다. 바람만큼이나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의 일과는 하루도 빠짐없이 밤의 일기에 기록된다. 일기에는 마침표가 하나도 없다. 작가 본인 말로는 라인이 흘러가는 리듬에 맞추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라인도, 삶도 원래 마침표 없이 흘러가니까. 생계를 위해 때로 가불을 받아야 한다. 머릿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일기를 쓴다. 다음 일자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방의 눈치를 봐야 한다. 노래를 부른다. 일기를 이어 쓴다. 일하다가 부상을 입어도 소염제를 털어 넣고 출근해야 한다. 이럴 때는 이런 노래가 생각난다. 그리고 마침표 없는 일기를 쓴다. 그리하여 오늘의 시간은 밤의 일기가 되고, 밤의 일기는 내일의 노래가 된다.

 

슬픔, 비극, 애환은 어느 순간에나 있다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충분히 많이 있다. 다만 거기에 신파는 없다모두에게는 일기가 있어 노래가 있다. 노래가 있으니 우리는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으며 괜찮다.

 

처음부터 주인공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견뎌낼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경이로울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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