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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일기 -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을 되돌아본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3년 6월
평점 :
사는 곳 근처 산을 탈 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산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걷다 보면 길이 나올 것이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가 지기 전에 산 초입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큰 산의 경우는 달라진다. 설악산, 지리산, 팔공산, 한라산을 올라간 적이 있는데 미리 등산로를 파악한다. 쉽게 생각하고 올랐다가는 산속에서 밤을 맞이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 초입에서 어슬렁대다가 내려오는 사람처럼, 내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책을 완독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관심이 있어서, 해결하지 못하는 마음 문제 때문에 책에 관심을 가지고 찾기도 했지만 진득하니 읽지 못했다. 머릿속에 어지러운 생각들(시기, 질투, 분노, 자책감, 피해의식 등등) 때문에 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길이 어디에든 있으리라 생각하듯 부담 없이 읽지도 못했고, 등산로를 정해놓듯 목표를 가지고 집중헤서 읽지도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글 읽기도 달라졌다. 관심 가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는 용도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거다. 반드시 완독한다는 생각보다 읽어보고 잘 읽힐 때만 완독하겠다는 마음. 근처 산을 무작정 걷는 마음과 비슷했다.
책을 읽다가 더 알아봐야 할 작가나 책 이름을 적어둔다. 그렇게 하다 보면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여러 권 보게 되고, 다 읽지는 못하지만, 커다란 그림 같은 게 그려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봐야 할 책이 많다는 사실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도 방대한 주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는 거대담론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 성경의 내용이나 신학적 담론도
결국 우리 민족의 기존의 내재적 사유체계 한 가닥으로써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고심의 역작이라 하겠다.
언제 내가 이토록 깊고 넓게 생각했는지,
다시 생각해 봐도 가슴이 벅차다.
독자들이 공감해 주기만을 기대한다.
언어적 개념을 초월하는 느낌 속에서
우리는 만날 수 있다."
<난세일기, 도올 김용옥> p233
<난세일기>는 많은 숙제를 던져 준 책이다. 내 안을 들여다보듯 우리의 역사와 위인들을 살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대중 매체나 외국의 것들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는 것들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주장했다는 걸 아는 것을 아인슈타인이나 상대성 이론에 대해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단순한 줄긋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가까운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신을 정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답에는 내가 해석한 정의는 없으니까.
나를 들여다보면 분명히 열쇠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성자와 현인이 수천 년을 관통하여 그렇게 말했고 이루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나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풀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서, 우리의 역사와 위인을 공부하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산 초입에 서 있다. 끈질기게, 견디며,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만 한다.
https://blog.naver.com/jhredblu/223147117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