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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하는 법
마리 꼬드리 지음, 최혜진 옮김 / 다그림책(키다리) / 2023년 12월
평점 :
당신은 ‘집순이/집돌이’인가, ‘바깥순이/바깥돌이’인가? 여가 시간이나 휴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어느 유형인지 극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 더 질문해보자. 당신은 성향이 정반대인 상대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가? 아마 적지 않은 이가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기를 망설이리라.
그런데 여기, 여행 짝꿍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집냥이와 바깥냥이가 있다. 책 속 세계를 모험하기 좋아하는 검은 고양이 필레아스와 바깥세상을 탐험하기 좋아하는 노란 고양이 페넬로페다. 둘 다 세상을 관찰하고 탐구하기를 좋아하지만 그 방식은 정반대다. 실행력이 뛰어난 페넬로페는 덜컥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가방을 꾸리는 반면, 몹시 신중한 필레아스는 바깥으로 나가는 문턱 하나를 넘는 데도 아주 긴긴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페넬로페는 혼자 여행길에 오르지만, 기차에서 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면서도 필레아스를 떠올린다. 그런데 첫 번째 여행지에 도착한 페넬로페가 짐을 풀자 옷가지 사이에 숨어 있던 필레아스가 튀어나와 인사를 건넨다. 앞 페이지로 다시 넘어가보면, 그제야 가방 틈새로 반짝이는 동그란 두 눈동자가 보인다. 페넬로페도 모르는 사이에 둘이 함께하는 여행이 이미 시작했던 것이다.
여행을 와서도 둘은 여전하다. 페넬로페는 온종일 바깥을 돌아다니고 필레아스는 며칠 내내 방 안에만 머문다. 페넬로페는 기껏 멀리 여행을 와서는 숙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필레아스를 보고 아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필레아스는 날마다 새로운 장소를 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페넬로페가 지치지도 않는지 의문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누구도 상대가 여행하는 방식에 딱히 불만을 품지 않는다. 도리어 둘은 서로를 생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페넬로페는 바깥에서 발견한 온갖 물건이며 소리를 모아 매일 저녁 필레아스에게 전해준다. 필레아스는 비 때문에 나가지 못해 심심해하는 페넬로페에게 방 안에서 즐겁게 보내는 법을 알려준다.
이 그림책은 두 주인공의 성격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대비 효과를 뛰어나게 활용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형광 노랑과 주황 사이에 묵직하게 스며든 짙은 남색은 화면의 균형을 잡아주는 동시에 밝은색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인간에 가까운 생김새였던 페넬로페와 고양이에 가까운 생김새였던 필레아스가 마지막에 이르러 체형이 뒤바뀌는 연출도 참으로 재치 있다. 남들과 대면하기 위한 페르소나는 인간에 가까운 형상으로,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자아는 동물 본연의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다른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책에서는 독자가 품었을 법한 궁금증을 직접 언급한다. 하지만 둘의 여행을 눈으로 좇다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필레아스와 페넬로페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서로를 챙기고 걱정하고 무엇보다 존중할 줄 안다. 더욱이 새로운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라는 더 큰 가치관을 공유한다. 이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간다면 내향형인지 외향형인지, 계획적인지 즉흥적인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여행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사실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존재끼리 만나고 부딪치고 어우러질수록 더 새롭고 다채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나팔 연주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알지 못할 테고, 반대로 한시도 쉬지 않고 나돌기만 하면 방문에 달린 손잡이가 얼마나 섬세한지 알지 못할 테니 말이다. 《우리가 여행하는 법》은 나하고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며 삶을 여행해보라 권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