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강명순 역, 열린책들)는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첫 장편소설로 발표되자마자 단번에 독일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독일 시나리오 상(1996년도)을 수상한 작가답게 쥐스킨트 특유의 통찰력과 뛰어난 묘사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와 비정상적으로 냄새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극도로 꺼리며 은둔 생활을 해온 쥐스킨트는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에게 외로운 자의식을 투영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로 그려지고,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 역시 쉽게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남자다.

소설 향수는 인간의 존재방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온갖 악취에 뒤덮인 파리의 한 시장에서 태어나 오로지 후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했던 그르누이. 냄새가 없다는 이유로 두려움과 외면의 대상이 되고, 타인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연히 맡게 된 한 소녀의 매혹적인 향기.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그르누이는 소녀를 살해하게 된다. 첫 살인을 저지른 후, 그르누이는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사랑을 얻어내려는 욕망은 향기에 대한 뒤틀린 집착과 광기로 변해 끝내 그를 괴물로 만든다. 그르누이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마침내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 몸에 뿌려 잠시나마 사람들의 사랑을 얻게 되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그르누이 자신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승리가 무서웠다. 왜냐하면 자신은 단 한순간도 그 승리를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평생 소유하기를 갈망해 왔던 향수, 2년에 걸쳐 만들어 낸, 사람들의 사랑을 획득할 수 있는 그 향수를 바르고 마차에서 햇살이 따사로운 광장으로 내려서던 그 순간. 그 순간에 벌써 그는 향수가 저항할 수 없는 영향력으로 바람처럼 빠르게 퍼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기쁨은커녕 최소한의 만족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p.359)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존재의 허무함,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불행한 현실과 맞닥뜨린 그는 결국 자멸해버리고 만다.

가히 천재라고 할 만큼 뛰어난 후각 능력을 가진 주인공과, 향수와 살인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결합은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가의 감각적인 문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를 때로는 호감이자 사랑으로, 때로는 명예권력으로 자유롭게 그려낸다. 한낱 연쇄살인범의 광기로 가볍게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의 통찰이 반영된 주제의식과 철학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존재와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치와 향락이 범람하는 시대에 타인의 인정과 사랑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타인의 반응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먼저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만족은 불가능하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그들이 보이는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현대인에게도 쥐스킨트의 질문은 커다란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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