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필수요소인 의식주 중 하나에 불과했던 집은 이제는 완전히 주객이 전도가 된 모양새다. 사람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요구되는 단순한 요소가 아니라, 집을 위해 사람이 자신의 온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사람을 위해 집이 있어야 하는데, 반대로 집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것은 "집"이라는 것에 어떠한 필사적인 절실함, 남은 삶을 결정 지을 만큼의 간절함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축복을 비는 마음]은 그러한 집과 사람, 사회를 조명한 총 8가지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대와 분양, 집주인과 세입자, 재개발, 부동산 투자... 정확히는 집을, 집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우리들 삶에 대한 이야기다. 주위를 둘러보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 더러 누군가는 직접 겪어 봤을 이야기들. 그렇기에 가슴이 막히고, 때로는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버거우면서도, 차마 책을 덮지 못하고 끝끝내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쫓게 되는 것은 그게 곧 지금의 우리 삶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틱한 결말을 기대하거나, 인물들에 나를 대리 투영해 그들의 대단한 인생역전을 바라서가 아닌, 그저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힘을 따라 자연스레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이 전하는 메세지에는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라는 힘이 존재함을 느끼며. 지치고 버거울지언정 결국 이 삶을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인 그 희망을 놓지 않으려.


 모든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 나의 의식은 이 책의 두 번째 단편에 다시금 머물러 있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이 사회의 현실적 갈등을 내밀하게 담아내는 <20세기 아이>. 집주인이 그저 기약 없는 재개발만을 기다리며 방치해둔 상태나 다름 없는, 그 낡고 허름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아이 세미. 모처럼 집을 보겠다며 투자 목적을 가지고 온 여자에게, 무기력한 가족들은 아무런 기대도 반응도 없이 시큰둥할 뿐이다. 어차피 이 집은 가족의 소유가 아닌 타인의 것이고, 설령 누군가 집을 사들인다 한들 그 사실은 이 가족에게 어떠한 변화도 끼치지 않을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주거하고 있지만 완벽히 그 공간에서 배제된 삶을 사는 가족들과 달리 세미는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여자가 집을 사지 않을까 하는, 여자라면 이 집을 이대로는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여자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 엄마도 새 집을 알아볼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 낡고 허름한 집에 잠식되지 않고, 그러한 집이 사회적 측면에서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에 갖히지 않고, 순수하고 밝고 쾌활하다. 아무 의미 없는 바람일지라도, 작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무런 욕심도, 어떠한 재단도 가하지 않은 그 순수한 마음. 그러한 마음을 끝끝내 함께 응원하며 축복을 빌게 되는 것. 그것이 결국 이 글을 관통하는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