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롤랑이 저술한 베토벤 생애와 음악(범우사, 2007)에 실린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여기에 옮긴다. 베토벤이 젊어서 얻은 귓병 때문에 얼마나 절망하였는지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 어떤 자료보다 호소력이 짙다.

내 동생 칼과 요한에게[1]

오오, 너희들은 나를 가련하고 광기가 있는 인간이며 사람을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지만, 그것은 나에 대해서 얼마나 부당한 짓이냐! 너희들은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의 이면에 숨은 참된 이유를 모른다!
나의 마음과 정신은 어려서부터 친절한 것을 좋아했고 따뜻한 감정으로 쏠렸었다. 나는 늘 크고 훌륭한 일을 하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6 년 동안의 내 처지가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는가를.
확실한 진단도 못 하는 의사들에 의해서 나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 왔고, 이내 회복되리라는 희망에 해마다 속아만 오다가 마침내 *만성병* 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회복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앞으로 수년은 걸릴 것이다.
나는 사교계의 즐거움에도 쉽게 마음이 움직이는, 열정적이고 행동적인 기질을 타고났으면서도 이렇게 일찍부터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고독한 생활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때로는 이런 모든 장애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나, 오오, 그 때마다 나는 불구라는 서글픈 현실에 부딪혀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람들에게, "더 큰소리로 말해 주시오. 소리쳐 주시오. 나는 귀머거리란 말이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완전해야 할 하나의 감각, 지난 날에는 다시 없이 완전하였으며, 분명히 나와 똑같은 직업의 사람들도 거의 갖고 있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소유하였던 감각의 결함을 어떻게 사람 앞에 드러낼 수가 있단 말이냐!
오오, 그런 일은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이렇게 떨어져서 생활할 수 밖에 없는 점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나의 불행은 나에게 있어 이중으로 괴로운 것이다. 그 불행으로 나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모임에 어울리거나, 신경에 부담이 되지 않는 담화를 즐기거나, 서로의 가슴을 털어놓으며 위안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혼자다. 완전히 혼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면 감히 사람들 속에 끼여들지 못한다. 나는 추방당한 사람처럼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의 모임에 가까이 가면 내 병이 탄로날 것만 같아서 가슴이 죄고 불안하다.
이 6 개월 동안 내가 시골에서 지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명한 나의 의사는 내게 될수록 청각을 쓰지 말라고 권했다. 의사의 그 권고와 내 자신의 뜻이 일치한 셈이다.
그래도 몇 번은 사람들 속에 끼여들고 싶은 마음에서 그들에게로 가보았다. 그러나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먼 데서 부는 피리 소리를 들었지만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에게는 양치기의 노랫소리가 들렸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큰 굴욕감을 느꼈겠느나! 이런 일을 몇 번이고 경험하고 난 후에 나는 거의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다. 하마터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뻔 하기도 했다. 이런 나를 제지해 준 것은 예술이었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아아, 나에게 주어진 것과 느끼고 있는 일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못 할 노릇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비참한 -- 참으로 비참한 -- 목숨을 이어 왔고, 조그만 변화로도 최선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떨어질 만큼 민감한 내 육체를 이끌고 온 것이다!
*인내다!* 하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내가 지금 안내자로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인내하였다 -- 참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 결심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냉혹한 운명의 여신들이 나의 생명의 줄을 끊기를 원할 그날까지.
나의 상태가 좋아지든 악화되든 각오는 되어 있다 -- 28 세에 벌써 체념하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일이다.
신이여, 당신은 나의 마음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환히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당신은 나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선을 행하고 싶은 희망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오오, 사람들이여, 어느 날 당신들이 이것을 읽게 되면 당신들이 나에게 얼마나 부당한 짓을 했는가 생각해 보라. 또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와 똑같은 어떤 불행한 사람이 자연의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나 선택된 사람들의 대열에 끼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의 동생 칼(과 요한)이여, 내가 죽은 뒤 그때까지 만일 슈미트 박사께서 살아 계시거든 바로 나의 병상(病床) 기록을 작성하도록 나의 이름으로 부탁해다오. 그리고 그 병상기록과 이 편지를 함께 보관해 두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죽은 후 세상 사람들은 나와 적어도 가능한 한도의 화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너희들 두 사람을 나의 적은 재산(만일 그것을 재산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의 상속인으로 인정한다. 그것을 정직하게 나누어 가져다오. 그리고 서로 사이 좋게 도와 가며 살아 다오. 너희들이 나에게 큰 고통을 준 것은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벌써 오래 전에 이미 용서하고 있다.
동생 칼이여, 네가 최근 나에게 베풀어 준 애정에 대해서는 특히 감사한다. 나의 소원은 너희들이 나보다 행복하고 걱정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너희들의 아이들에게 덕을 권하기 바란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오로지 덕뿐이다. 돈으로는 행복해질 수가 없다. 이것은 경험에 비추어 하는 소리다. 나의 비참한 생활 속에서 나를 지행해 준 것은 오로지 이 덕이었다. 내가 자살로써 나의 생명을 끊지 않은 것은 나의 예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이 덕 때문이기도 했다.
잘 있거라. 서로 사랑해라! 나는 모든 친구 중에서도 특히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슈미트 박사에게 감사한다. 리하노프스키 공작이 나에게 보내 준 악기는 너희들 중의 한 사람이 보관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그 때문에 너희들 사이에 알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라. 만일 돈으로 바꾸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면 바로 팔아도 좋다. 내가 무덤 속에서라도 너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만일 내가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겠다. 하기야 나의 운명은 가혹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예술적 능력을 모두 발휘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죽음이 온다면 너무 이르게 왔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나는 죽음이 좀 늦게 왔으면 하고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만족한다. 죽음은 나를 끝없는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겠느냐? 언제나 오고 싶을 때 오라. 나는 감연히 너(죽음)를 맞이하리라.
그럼 잘 있거라. 내가 죽어도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말아다오. 나는 너희들이 생각해 줄 만한 인간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너희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수없이 너희들을 생각했으니까. 부디 나의 부탁을 들어 다오.

하일리겐쉬타트에서, 1802년 10월 6일
루드비히 반 베토벤

나의 동생 칼(요한)에게
- 내가 죽은 뒤 이것을 읽고 실천하라

*하일리겐쉬타트에서, 1802년 10월 10일*
친애하는 희망이여, 그러면 너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정말 슬픈 마음으로. 그렇다, 병이 나을 것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나을 것이다 하고 지금까지 줄곧 가졌던 희망 -- 그것이 완전히 나를 버린 것이다. 가을의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썩는 것 같이, 꼭 그와 같이 희망도 나로부터 떨어져 시들고 말았다.
거의 이 세상에 올 때의 그 상태 그대로 나는 이 세상 나날에 비이고 나를 을 떠나간다. 여름의 아름다운 나날에 몇 번이고 나를 받쳐 주던 저 뛰어난 용기도 지금은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다.
오오, 신이여 -- 맑게 갠 환희의 하루를 한 번만더 보여주십시오! 벌써 오래 전에 참된 환희의 깊은 울림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오! 어느 날에나 -- 오오! 신이여, 어느 날에나 나는 다시 자연과 인간의 전당 속에서 그 울림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영원히 그런 날은 오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오! 그것은 너무나 참혹한 일입니다!

주1. 원문에는 요한의 이름을 적어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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