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주영헌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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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지나가 버린 시간

바쁜 일상 속에서

시를 읽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지하철을 기다리며 마주한

투명한 스크린 도어에 레터링 된 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일상의 피로감을 잠시 잊게 할 뿐

따뜻한 무언가는 채워주지는 못한다.

시는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뜨거운 커피여야 한 걸까?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일러스트가 예쁜 시집을 받았다.

사랑의 감성이 가득한 시집이다.

시인은 그 짧은 글에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한 사랑을 노래한다.

순수했던 시절

설레었던 순간

잊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외로움에 사랑이 아닌 원망으로 채웠던 마음에

시인의 사랑 노래는

오글거리게 낯간지럽게 했다가

소녀 감성을 되찾게 한다.

 

시가 주는 힘은 무한하다.

짧은 문장에 담긴 서사와 위로는

잊고 있었던 나를 찾는 시간이 되게 하니...

 

 

*이별 예보

 

비 소식이 없지만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몸은 세상 밖의 소리를 잘 예감하는 편이라서,

아우성을 치는 경우도 있어서

진실하다고 믿습니다

 

몸살을 닮은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몸은 당신이 떠나간다고 얘기하기 전부터

진저리를 쳤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서야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과거 진행형의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별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와서야 예보합니다

 

 

*반대쪽

 

당신이 나의 왼쪽에 있을 때

나는 당신의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내가 오른쪽을 바라볼 때

당신은 왼쪽을 바라봅니다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려는 시소처럼

우리는 서로의 다른 편이었습니까

 

당신의 싸늘한 두 손과

차가운 한숨

쓸쓸하게만 보였던 뒷모습까지도

 

우리에겐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발이 되어

먼 길 걸어가는 외발입니다

 

 

*당신에게 포위되다

 

나는 완전히 포위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벽은 이쪽과 저쪽, 아래와 위를 둘렀습니다 벽은 안전하지만, 나는 내부에 벽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외부에서 그 누군가 소리 질러도 들리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짓이겨 치댄 벽은 어느 벽보다 견고합니다

 

벽은 나에게 친절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벽 속에 안전히 숨을 수 있었습니다 벽은 방세를 일시금이나 월세로 요구하지 않습니다 견딤의 시간을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삶의 시간을 얼마간 내어 주고 몸에 맞지 않는 계절을 지나칠 수 있습니다 완전한 교환입니다

 

벽은 입도 없고 손도 발도 없으며 오직 들을 수 있는 귀만 있습니다

 

, 당신을 닮았습니다

 

*반딧불이

 

나는 빛을 먹고 사는 곤충

 

반딧불이가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까닭은 누군가의 마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를 위해 더 밝아져야만 했던 당신

 

당신이 어두워진 것은 나 때문입니다

어두워진 당신을 밝히려

내가 더 힘을 냅니다

 

당신은 이제 나의 빛을 먹고 사는 곤충

 

홀로 남겨져도 당신과 나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낮 동안 볼 수 없지만

어두워지면 서로를 위해 빛을 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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