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통치론 나의 고전 읽기 5
박치현 지음, 존 로크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오늘 아침 고개를 푹 숙이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터덕터덕 학교로 걸어가는 작은 아이를 보았다.

아침이라 쌀쌀한 기온이었고, 아이는 주말의 여독이 안 풀렸는지 아니면 아직도 잠에서 덜 깼는지, 억지로 억지로 발걸음을 떼는 중이었다. 애처로워 보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아니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배우는 것은 '좌절'이다. 가기 싫어도 학교에는 가야 하고, 하기 싫어도 공부는 해야 하며, 일하기 싫어도 지옥철에 몸을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능력만큼 혹은 노력한 만큼 더 많이 갖게 되고, 그만큼 더 '자유로워진다'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인 외적 강압 없이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그만큼 소유하는 것, 소유한 만큼 상품과 용역을 맘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우리가 가진 자유 관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많은 자유를 위해 더 많은 돈을 꿈꾼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위해 오늘 하루를 기꺼이 바친다. 번 돈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유혹하는 물건들을 사느라 소비된다.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충동에 시달리지 않고 더 근사한 물건을 사고 싶다는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살 도리는 없다. 

게다가 선거에서는 우리의 재산을 가장 잘 불려줄 통치자와 정부를 선택한다.

이것이 사회가 우리에게 알려준 '자유를 얻는 법'이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런 자유 관념의 노예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그 작은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발걸음을 터덕터덕 내디디며 학교로 가야 했던 것이다. 더 자유롭게 되기 위해, 더 많이 갖기 위해. 사실 그렇게 되고자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박치현의 이 책은 살면서 한번쯤을 생각해봤을 우리의 역설적 상황을 로크의 <통치론>이라는 옛날 책에 비추어 해명하고 있다.

우리의 부자유한 자유의 상황은 인간이 온갖 외적 강압에서 자유롭고자 '사회계약'을 꿈꾸던 시대에 걸려든 덫이다. 인간은 자유롭고자 했으나 인간이 꿈꾸고 결국은 실현시킨 '자유'는 사실은 부자유의 덫을 감추고 있었다.

이 부자유의 덫은 우리의 자유 관념을 원초적으로 형상화해준 로크의 저서로부터 해석되고 비판될 수 있다. 이것이  고전이 현재에도 살아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먹고사느라 지친 심신을 가다듬어 고전을 충혈된 눈으로 읽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듣기 좋은 글귀들이 모여 있는 것이 고전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으로서의 고전, 그래서 우리의 불행의 씨앗이 검출되도록 씹고 또 씹어야 하는 책들이 바로 고전인 것이다.

저자는 아직 젊은 남성으로서, 그래서 물질적 욕구와 그 좌절감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현실적인 사람으로서의 감각을 숨기지 않은 채 로크의 <통치론>에 접근한다.

생생하다는 느낌, 톡톡 튀고 쌉싸름할 정도로 자극적인 느낌은 박치현의 이런 자세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아마도 소유를 통한 자유에의 욕망과 그 좌절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박치현의 자세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낄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물질적 가치에 민감하고, 또 물질적 가치를 열렬히 소망해서 문제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시쳇말로 요새 아이들은 돈만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에 이토록 민감하다는 것은 자본주의사회로서 우리 사회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체감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화폐는 자유의 상징인 동시에 부자유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고상한 가치는 우리가 부딪치는 현실적 문제와 관련을 맺을 때 가장 큰 에너지를 얻게 된다. 현실과 이념은 별개의 것이 아니므로.

이 책은  이 사소한 진리의 가치를 다시금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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