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면 언제 오나 - 전라도 강진 상엿소리꾼 오충웅 옹의 이야기 민중자서전 1
김준수 글.그림 / 알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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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원고지, 학교앞 뽑기...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리워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에 관련된 추억이 있는 만큼 우리들은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금은 사용할수도 없는 삐삐를 간직하기도 하고, 가끔은 원고지를 꺼내 시를 끄적여보기도 하고, 학교앞 불량식품들을 찾아 먹기도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만큼 사라지는 직업도 많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파트 경비라는 직업이 없어질 거라고 한다. 학교 갔다오면 잘 왔느냐고 물어보던 경비아저씨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좀 서운하다. 상엿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은 티브이를 통해서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드라마를 보며 상여가를 들으며 눈물짓는 것을 보면 그분들에게 상엿소리는 추억이 깃든 소리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장의사라는 직업도 거의 사라졌다. 그것을 대체하는 직업이 있긴 하지만 역할은 많이 변한 것 같다.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장례가 불필요하게 거창하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 싶고 상여가를 부르는 것도 무슨 의미인가 싶은데 우리 조상에게 상엿소리는 죽은이의 행적을 읊고 슬픔을 노래에 실어 보내는 의미 등이 있었던 것 같다. 여럿이 함께 상여를 메고 가니 노래를 하면 더 수월하게 옮길 수 있었을 테니 일종의 노동요였던 셈이다.

 

상여소리꾼 오충웅 옹의 인생은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게도 해주었다. 어려서부터 노래부르는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는 가수가 되길 바랐으나 전쟁이 끝나고 일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노래 부르는 직업을 천시하던 분위기 속에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역시 노래에 재능을 보이던 여자와 연애도 했지만 헤어지게 되었고 오래도록 그녀를 잊지 못했다. 마치 그가 자신의 꿈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던 것처럼. 하지만 상여소리꾼이 되어 평생 상여가를 불렀으니 불행 중 다행인 것도 같다.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인 상엿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있었으면 싶지만 세상의 변화를 막을 순 없는 것일까. 인터넷에서 상엿소리를 찾아 들어보았다. 구슬프지만 따라부르다보면 이루지 못한 꿈도 생각나고 산자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제대로 고인을 보내주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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