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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종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영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야생종>은 옥타비아 E. 버틀러의 5개의 소설로 구성된 Patternist 시리즈의 첫번째 소설이다. 이 책에는 도로와 안얀우라는, 두 신적인 존재의 몇 백년에 걸친 사랑과 증오과 번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단 두 등장인물에 대한 요약부터 해보겠다.
도로: 천상 남자. 워리어. 정복자. 정신력으로 아무나 죽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육체로 갈아탈 수 있는 능력 덕분에 몇 천 년간 살아온 불멸의 존재. 초능력자들을 모아서 번식시켜서 다양한 초능력이 있는 자손을 얻는 실험을 한다. 이를 위해서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번식을 위한 파트너를 강제로 정해준다.
안얀우: 천상 여자. 치유자.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동물로 변할 수도 있고 스스로의 몸을 치료할 수도 있어서 죽지 않고 몇 백년을 살아간다. 자신과는 달리 불사의 존재가 아닌 자식들의 죽음 앞에서 괴로워 하지만, 천성이 치유자이자 caregiver인 탓에 자식을 낳아 돌보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불사의 자식들을 만들어 보자는 도로의 설득에 넘어가 도로의 지배 하에 놓이고 도로의 자손들을 번식시키는 도구로 전락한다. 동물로 변하는 능력을 이용, 대륙을 넘나드는 대 탈출극을 벌여 미국에 정착한다.
어떤 작가들은 평생에 걸쳐 같은 주제를 탐구하는 소설을 쓴다. 옥타비아 E. 버틀러도 그런 경우에 속하는데, <Bloodchild>와 <Xenogenesis>에 이어 <야생종> 역시,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애증, 지배와 피지배, 생식/번식을 주제로 하고 있다. 안얀우는 도로가 파트너를 정해주는 대로, 도로의 아이를 10명 정도, 도로의 아들들의 아이도 여럿 낳아 기르는 수모를 당한다. 안얀우는 동물로 변신해 탈출에 성공하지만, 안얀우가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면 도로가 텔레파시 능력으로 아냐누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도로를 피할 수 없다. 안얀우는 도로의 폭력성과 지배욕을 혐오하고, 도로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자신에게 순순히 복종하지 않는 안얀우를 증오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을 다 떠나 보내고 천 년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 이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 때문에 서로를 그리워하는 존재이다. 때문에 도로는 결국 안얀우를 죽일 수 없고, 사소한 이유로 살인을 반복하는 도로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안얀우가 자살을 택하려고 하자, 도로는 안얀우에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을 맹세한다. 둘은 때로는 증오하며, 때로는 사랑하며, 때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또한 때로는 그저 실험을 위해서, "죽네, 사네, 죽여, 살려" 하면서 끊임없이 자식을 낳는다. 그야말로 해괴하기 이를 바 없는 관계이지만, 이것이 바로 호적수이자 운명의 상대인, 인류 역사 속의 남자와 여자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