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치 한 선 상에서 만나 걷는 기분이 든다. 이석원 작가의 <보통의 존재>를 두 권이나 사놨다가 읽지 못했다. 그러다 먼저 만나게 된 신간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작가는 사십 대 중반의 나이로 30대 초반에 잃은 친구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딱 한 명인데 그 친구를 잃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잊힐까. 그는 친구를 잃고 나서 10년이 넘게 흘렸지만 잊지 못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멈춰버린 친구와 시간에 비례하게 정직하게 늙어가는 자신.


가난해서 집을 이끌었어야 했기에 글을 썼다. 글을 써서 집 평수를 조금씩 늘려 이사했고 나이 든 어머니에게 생활비도 줄 수 있게 되었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직장에 다니면서 스트레스 받고 버티기 힘들 때도 있는 것처럼 비슷하겠지란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달콤하니 일단 입에 넣고 본다. 제 나이가 ㅇㅇ인데 가능성 있을까요?란 질문들에는 대부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듣는다. 물론 질문하는 사람도 그런 희망적인 댓글을 바래서겠다. 나도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30대가 보기에 20대는, 40대가 보기에 30대는, 50대가 보기에 40대는 뭐든 다 할 수 있는 나이처럼 보이기도 할테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단 걸 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나의 능력 또한 내가 살아온 인생만큼만 가지고 있기때문에.

어머니의 노동은 그림자노동이다. 어머니는 누군가의 성공과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어머니의 그림자 노동의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아버지는 직장에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었고,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삼시세끼를 차리고, 빨래를 하고, 널고, 개고, 집안 청소를 하고, 대소사를 챙기는 일은 당연하고, 힘들지 않고, 가끔은 즐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 그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보니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거다. 엄마도 이제 좀 쉬고 싶다는 말에 '아, 엄마도 어쩔 수 없이 그 많은 일들을 견뎌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왜 지나고 나서야 아는지. 왜 엄마가 되어보고 나서야 엄마의 고된 노동과 지쳐버린 어깨가 보이는 것일까.

이석원 작가는 사십대 중반이다. 사십대 중반을 지나며 삶의 단편들을 붙잡는 그의 글들은 꽤 오랜 기간 활자에 눈을 못 떼게 한다. 내가 지금 삶의 무게에 짓눌려 젊음인지도 자유로움인지도 모르고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인생의 긴 선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 진지함과 고민이 묻어나는 솔직한 산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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