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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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 산행을 한다. 히말라야 산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외지고 외진 곳 그곳에 사람들은 예수의 존재와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소수 정원을 꾸려 히말라야 트레킹을 결심했다. 경관과 경치는 눈을 못 떼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눈물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존재가 있다면 왜 이들에게 이런 시련의 고통을 주시나이까, 왜 어린 소녀들을 이용해 성노예로 만드는 인신매매범들을 벌하지 않으시나이까 나의 속마음 그대로를 작가는 드러낸다. 병원이 없어 약 먹고 수액 맞으면 나을 병들을 고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다. 아이는 8살이 되기 전에 반이 죽는다. 우리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죽음을 접한다. 하지만 수치로 접하는 것과 그곳에 가서 이름과 얼굴이 있는 존재로 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가진 것에 불만족하며 늘 불평에 이른다. 나는 병에 걸리면 바로 병원에 가서 적절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여러 종교에 관해 공부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따뜻한 집이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구하여 먹을 수 있다. 나를 성노예로 팔아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왜 그들은 그러지 못할까.


나는 사랑 많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고 나빈은 매질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태어난 첫날부터 물과 음식, 백신 접종까지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아온 반면, 오늘도 이런 것이 없어서 2만 명의 아이들이 죽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분이 만물과 만사를 다스리신다고 믿지만 내가 누리는 이런 복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이들이 왜 그토록 많은가? p78

약자들에게 잔인한 곳이다. 딸들은 성노예로 팔려가고, 장애인과 어린아이들은 매질을 당하고 헛간에 갇힌다. 예수는 왜 이들을 돌봐주지 않는가.

그들은 성경말씀을 듣기 위해 3주에 걸쳐 산을 오른다. 나는 주차 자리가 없어 불편하다고 교회를 가지 않는다. (물론 설교 말씀이 별로인 이유도 있다!) 부끄러워졌다.

그들에게 예수를 아냐고 물어보니 어디 옆 마을의 누구를 아냐고 물어본 것처럼 대답한다. 복음을 전하려 하니 당장 마을을 떠나라고 한다. 그들은 다른 신을 믿게 되면 재앙이 내린다고 생각한다. 어떤 신을 믿는지는 자유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다른 신을 알려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다짜고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영적 충만함(복음)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건 육체적 충만함(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도와준다던가, 약을 제공)이다. 우리는 더러운 물을 마시고 설사병에 걸려 죽지 않지만 그들은 죽는다.

복음을 전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나님이 만물과 만사를 다스린 다는 걸 알지만 과연 이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을 수가 있을까? 성경에서는 더한 상황에서도 예수만을 믿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과연 그 사람들에겐 뜬구름 잡는 일인지도 모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일까 그들이 일단 살게 해주는 것이 우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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