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
소강석 지음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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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의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는 나의 유년의 뜰엔

항상 함박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술만 드시면 포악해지는 아버지

어머니를 향한 무서운 호통 소리가

어린 가슴을 조여들게 하였지만

어머니를 지켜주고 싶었지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별 아양을 다 떨어도

내심으론 아버지를 증오하였습니다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밤새 아버지 옆에서 거친 손을 잡고 잠들어야 했던

어리고 슬픈 소년

그러다가 함박눈이 내리던 새벽녘

소년의 몸이 불덩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등에 업고

눈길을 단숨에 달려

이웃 마을의 간이 약방에 도착해서야

아들을 내려놓고 급한 숨을 몰아 쉬셨지요

소년은 지금 그 아버지의 나이를 지내면서

눈 내리는 날의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합니다

허리가 휘도록 키우고

애끓는 심정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어도

부부싸움을 하면 언제나 엄마 편이 되어버리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야

아버지 편이 되어 봅니다

오늘도 나의 눈앞에는

아버지께서 함박눈을 맞은 모습으로

말없이 서 계십니다


꽃씨

언제부턴가

꽃씨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뜨락에 꽃씨를 심습니다

세상 가득 향기로 덮고 싶기에

이젠 꽃을 꺾어

선물하지 않으렵니다

그보다

꽃씨를 나누어주고

그 마음에 뿌려주기로 했습니다

더딜지라도

코끝에 물씬 풍기는 향기 없을지라도

한 아름 안겨주는 화사함 덜할지라도

오늘도 꽃씨를 뿌립니다

마음의 밭을 일구어

열심히 꽃씨를 뿌립니다

그날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서

향내 가득하고

이 세상 꽃들로 가득하게 될 때를

기다리며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는 이 꽃씨들을 천국에 가져가렵니다.


바람의 언어

오늘 밤

바람의 소리는 들어왔지만

바람의 첫 언어를 듣습니다

네 인생도 이젠 가을 산을 닮았노라고

아직 가을이 문턱에 서 있는데

벌써 산속에선 단풍을 만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바람의 언어에 동글동글 여문

밤알들이 톡톡 떨어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질 가랑잎들은

떨어진 밤알들을 덮어 줄 것이며

또 다시 바람의 언어는 꿈을 꾸는 밤알들에게만

내년 봄 밤나무의 새싹으로 태동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밤에야 바람의 언어를 들었습니다

떨어지는 밤알과 바람에 굴러가는 마른 잎새를

모두가 나의 삶입니다

겨울이 오면 나는 다시 바람의 언어를 듣겠습니다

삶과 죽음이 악수하는 계절에

다시 바람의 새 언어를 듣고

저 산 너머 새로운 영토에서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겠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시 세 개를 꼽자면 <눈 내리는 날의 아버지>, <꽃씨>, <바람의 언어>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에는 내 아버지가 겹쳐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술 마시고 포악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다혈질인 아버지가 무서워 기분을 맞춰주곤 했었고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했었다. 감정표현이 서툴러 내가 다쳤을 때 화를 냈던 아버지가 그땐 그리도 미웠는데 지금은 마음이 많이 아픈 걸 표현하지 못해 그랬다는 걸 안다. 또 자라고 보니 아버지의 사랑이 가까이에 있었음을 안다. 나는 엄마지만, 아이들이 엄마 편을 들 때 내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도 조금 짐작이 간다. 소강석 목사도 함박눈이 내리던 날 자신을 업고 약방으로 뛰어가는 아버지의 등 위에서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느꼈으리라. 그랬기에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있으리라.

<꽃씨>를 읽다 보면 소강석 목사가 어떤 나라를 이루고 싶은지 엿볼 수 있었다. 시에 대한 해석은 모르지만 혼자서만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이기적인 세상이 아니라 예쁜 꽃은 잠시 미뤄두고 꽃씨를 열심히 심어 모두들 그 꽃을 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바람의 언어> 아이들은 바람이 말을 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의 기준에선 바람은 바람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성인이 되어서 가만히 앉아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소리를 무시하여 자연에게 벌을 받기도 한다. 겨울은 죽음을 연상하지만 그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죽음과 삶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강석 목사는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과 함께 한 삶 그 뒤에 시온 성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교과교육 과정에서 우리는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여파로 성인이 되어 시를 접할 때도 종종 '숨은 의미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든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과 친해지라고 하지 않는다. 시는 다른 사람의 세상에 빠져들기에 좋은 수단이다. 미사여구도 많지 않고 부연 설명도 없지만 빠져들게 하는 매력. 이 책을 통해 소강석 목사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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