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서운하게 하는 것 모두 안녕히
김민준 지음 / 자화상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슬 안의 작은 물고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이탈하였고, 새까만 어둠 속의 목소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껍데기를 깨부수고 새로운 인연을 향해 뻗어나갔다._17p

'맞아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로하려 들지만 대부분 각자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있을 뿐인걸. 혹은 자신에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것들을 타인에게 돌리며 위로를 가장한 자기방어를 행하고 있는 거야.'_60p

"그래서 너에게 기억이란 어떤 의미지?"

"고장 난 시계 같은 거. 언제나 늦게 깨닫게 되고, 잘못된 것을 가리키고, 나와 현실 사이에 수많은 시차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게 기억 같아."_67p

무릇 외로움이란 '더 열심히'라는 것으로 쉽게 견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_75p

"아들아, 괜찮다. 때때로 놀라운 기적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식어가는 연기 속에서 일어나기도 하니까. 살아가다 보면 네 가슴 안에 한때 품었던 그 불꽃이 새까맣게 멎어버리는 순간도 있을 거란다. 감당하지 못할 자책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네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온기로 삶은 한층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걸 말이다."_152p

때때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란, 사람 마음에 깃든 긴장과 불평들을 잠재우는 데 탁월한 행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맛이란, 작은 자유를 선사하는 것과도 같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복잡한 감각들로부터 벗어나, 오직 '맛있다!'라고 하는 쾌락의 영역 속에 머물게 하는 것. 따라서 명장의 맛이란 손끝의 기술이 아니라, 먹는 이의 고단함을 치유하고자 하는 인간애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_169p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세상에 사랑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깨우친다. 나의 모자라고 작은 마음으로는 결코 다 헤아릴 수 없는, 조건도 없는 숭고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그녀로부터 배웠다. 나에게 어머니란 어떠한 문장보다도 고귀한 존재이고, 내 삶에 있어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단어와도 같다._226p

내가 나로 태어난 이유는, 그까짓 순위 같은 기준에 얽매이지 않아도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요. 저는 남들 말처럼 조금 애매한 사람이거든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저는 그런 제가 좋아요._272p


빨갛게 변한 피부로 고통받는 지금이가 있다. 어떤 수를 써도 나아지지 않아 스스로를 가두게 된 지금이. '순 엉터리,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야. 나는 더 이상 이따위 왜곡된 시선들에 상처받아서는 안 돼.'라며 바다에 가서 수영복을 입고 서 있는 지금이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선'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가두고 사는 건지 생각해보았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다 보면 자신이 스스로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한다. 타인의 주관적인 시선에 의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이의 모습을 보면서 화장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이젠 화장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거리로 나오는 모습이 생각난 건 나뿐일까.

초밥 명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로하는 당연한 수순처럼 20년째 초밥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아들은 초밥을 만들지 않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처럼 초밥을 만드는 일을 하길 바라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처럼 되지 못하는 재능 없는 자신을 탓하던 이로하, 갑자기 아버지가 초밥을 더 이상 만들지 말라고 한다. 명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아버지를 따라 초밥을 만드는 일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한다. 자식들은 부모를 보면서 자란다. 가업을 잇는 사람이 많은 이유일 테다. 아버지는 자기를 따라 초밥을 만드는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바랐다. 결국 자신은 초밥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이로하가 자신의 아들이 사진 찍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의 인생을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좋은 아이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줄도 안다. 부모의 역할은 지지해주고 기다려주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소설가라는 직업 참 매력 있다. 물론 쏟아지는 출판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고,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인세를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혹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어 다른 사람의 공감을 사고 빈 공간을 내어주어 다른 사람과 채울 수 있다는 건 참 매력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