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자화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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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몹시 괴로웠지만 모든 일에 대해서 언제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단지 때때로 벌어지는 일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불길한 운명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았다.(55p)

"그건 한낱 옛날이야기에 불과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이 종교가 가진 결함이 잘 나타나 있단 말이야. 구약이나 신약 속의 신의 모습은 아주 완벽하고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것이 본래 신을 나타내는 모습은 아니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신이란 고귀하고 아버지의 존재와 같이 아름답고 높으면서, 다정다감한 것이라는 것은 올바른 말이야! 하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세계도 존재하고 있단 말이야. 이 다른 부분은 전부 악마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세상의 이러한 부분의 전부, 즉 세상의 절반은 은폐당하고 묵살되고 있는 거야. 신은 모든 생명을 근본적으로 찬양하면서도 생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성생활은 전부 묵살하고 악마적인 것이나 죄로 여겨 단죄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 우리는 신께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해야 해. 그래야 정당하다고 할 수 있어. 혹은 자신의 내부에 악마까지도 내재 시키고 있는 신,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 앞에서 의례적으로 무시할 필요가 없는 그런 신을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해."(95~96p)

"너에게 불행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말이야. 무엇 때문에 술을 마시는지는 우리 둘 다 모르고 있어. 하지만 네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 너의 생명을 형성하고 있는 그것은 깨닫고 있을 거야.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135~136p)


 서양 고전으로 유명한 데미안을 처음 읽어보았다. 조금 어렵지만 읽다 보니 아!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구나라는 게 딱 느껴졌다. 싱클레어는 두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나의 세계는 모범적이고 그저 바른 세계 아버지와 어머니이고 하나의 세계는 다른 말, 다른 환경을 가진 하녀, 직공들의 세계이다. 싱클레어 집안은 매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그런 신앙심이 깊은 집안이다. 그러다 싱클레어가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다 자기가 한 짓도 아닌 도둑질을 했다고 말한다. 이후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아귀에 걸려든 것 같아 괴로워한다. (아마 이런 시련을 이 전에 겪어보지 못해 더욱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러다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찾아간다. 데미안을 통해 크로머에게 속해 있던 세계를 깨어 나온 것이 싱클레어에게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첫 발판이 되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겐 두 가지 이상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세계(보통 많이 함께하는 부모 아래의 세계)와 내가 가고 싶은 세계, 그리고 학교에서의 세계에서 나는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데미안의 우리는 신께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해야 한다는 말. 우리 모두 마음속에 악마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섬긴다는 성직자들도 하루가 멀다 하게 나쁜 짓을 해서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모든 사람 마음속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 모태신앙의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땐 부모님 따라 교회도 성실하게 다녔고 성경공부도 했었다. 그땐 그 세계가 진짜인 줄 알았다. 성경에 나온 이야기에 대해 맞다 틀리다를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른 세계와 소통하는 내게 더 이상 성경에 대한 믿음은 많이 퇴색됐다. 하나의 세계에서 살다 다른 세계로 나아가며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소년 싱클레어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나는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완전히 그와 닮아 있던 나, 내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나를

 이 책의 마지막 구절. 자신의 열망을 찾다 어떤 이미지에 도달하게 되고 그 여인이자 데미안인 그에게 입맞춤을 받고 난 후 그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쓰여 전쟁이 끝난 후 출판되었다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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