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지금 달리는 기차 위에 서있습니다. 기차는 저멀리 절벽 위의 끊어진 선로를 향하여 내달립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완전히 절망하여 선택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고, 사태를 초래한 기관사를 비난하고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여전히 이 기차 위에 서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때 "난 기차가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한 아무 책임이 없어,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는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지나친 과장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이 보기엔 꼭 그렇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그가 흑인차별에 항거하고, 전쟁에 반대한 것은 어떤 이념적, 사상적 바탕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폭격수로 참전했고 조선소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눈을 틔운 것은 달리는 기차 위에 놓인, 혹은 그 기차의 선로 위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성, 흑인, 유색인, 베트남 민중...그리고 세상의 온갖 약자들. 그는 단지 기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가 무언가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차는 너무나 거대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디를 향해 내달리는지는, 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사회는 매우 거대하고 복잡한데 반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시야는 작디작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실에 앉은 어떤 이는 기차의 안락함에 찬사를 보낼 것이고, 화물칸에 끼여 탄 어떤 이는 어떻게든 기차에 남아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특실에 앉은 누군가와 화물칸에 끼여 탄 누군가가 모두 똑같은 한 표를 내고 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한 표를 내지 못 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곧 표를 가진 사람들의 기차에 그 사람이 치여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의 내달리는 민주주의는 민중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리로 나서는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워드 진은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였지만 누구보다도 민중에게 친숙한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몇번의 경험을 통해 법이 민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기차를 달리게 하는 수많은 복잡한 메뉴얼들이 승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하워드 진은 혼자의 힘으로 기차를 절대 멈출 수 없음을 알았지만 낙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변의 운동가와, 그를 돕는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지를 거듭 입에 담습니다. 결국 단단한 인종분리의 벽은 깨어졌고, 전쟁에 대한 반대는 세상 사람들의 이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워드 진은 민중의 힘을, 사람들의 힘을 믿었습니다. 하워드 진의 이 한마디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보다 의미있는 한마디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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