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라 넉넉한 기간을 잡고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7편에 달하는 장편을 이틀만에 완독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어요. 독특한 소재와 살아있는 듯한 인물들과 떡밥 회수 확실한 사건의 진행과 만족스러운 결말ㅠㅠ 한 편의 잘 짜인 글을 읽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포만감을 느끼곤 하는데 다 읽고 리뷰를 쓰는 지금까지 읽을 때 느꼈던 감정들의 여운이 남아 있네요. 단순히 재미있다고 표현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었습니다.
주인수인 서정(쎄오)은 후천적인 공감각 능력자입니다. 장인의 혼이 깃든 예술품을 볼 때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오라를 색깔로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죠. 선천적으로 있던 능력은 아니고 화재로 소사한 아버지의 각막을 이식받은 후 발현한 건데 이를 이용하여 주변의 감정 의뢰를 도와주곤 합니다. 서정은 아버지가 저질렀던 부정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고 아들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갚아나가려고 합니다.
공인 이안과는 예술품이라는 매개체를 두고 만나게 돼요. 어딘가 위험해 보이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듯 하지만 외모와 재력이 완벽한 이안에게 서정은 끌릴 수 밖에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들을 둘러싼 관계를 촘촘하게 보여주는데 읽다 보면 오래된 애증의 굴레에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손을 놓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런 스포 없이 바로 글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리뷰를 먼저 접하고 정말 사전 정보 하나도 없이 읽기 시작한 건데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ㅠㅠ
독특한 소재 선정도 좋았어요. 고가의 미술품 옥션에 얽힌 여러 가지 비사들과 전문용어 등을 각주로 따로 설명한 부분도 정독했고 수인 쎄오의 직업인 소믈리에와 결부시켜 고가의 와인들이 나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스케일이 큰 만큼 여러 나라를 넘나드는 배경도 좋았고 정말 물 쓰듯이 써도 타격감 없는 공의 재력도 매우 바람직했습니다ㅋㅋㅋ 책을 읽으면서 얻는 단순한 재미적 만족감 외에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았어요. 원래 이런 장편은 한 번 읽으면 바로 책장에서 삭제하는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책장에 그대로 놔뒀습니다. 모든 전말과 감정을 알고 재독하면 또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아! 씬 얘기 꼭 하고 싶어요.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고 해서 절대 씬이 부족하거나 못한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개인에 따라 호불호는 있겠지만 제 기준 스토리와 감정선 둘 다 적절하게 배분된 느낌이라 괜찮았어요. 이안이야 뭐 공이 가진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고 (피지컬한 면도요) 수도 갈수록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하는 부분이 예뻤어요.
결말 만족하는데 인간적으로 외전 꼭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소믈리에 국가대표 된 정이의 활약도 궁금하고 큰 사건은 해결됐지만 둘의 소소한 일상들도 궁금해요. 중국으로 터를 옮긴 후 둘의 꽁냥대는 외전이 꼭 나오길 기대합니다.
장편이지만 늘어지는 부분 없이 잘 쓰인 수작이라 여기저기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탄탄한 서사와 필력을 작품 선택의 최우선 조건으로 선택하는 독자라면 아마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