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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집 - 열네 명이 기억하는 첫 번째 집의 풍경
신지혜 지음 / 유어마인드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최초의 집>>(신지혜 지음, 유어마인드, 2018년)은 2010년대에 한국에 살고 있는 열네 명에게 “첫 번째 집”의 기억을 묻고 그 대답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인간에게 특별한 형식의 공간인 ‘집’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여러 방식을 보여 준다. 책을 읽고 나면 집, 즉 공간이 인간의 삶과 함께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네 명의 인터뷰이는 첫 번째 집을 하나의 “세계”로 기억한다. 첫 번째 집은 단순히 건물 한 채가 아니라, 기억하는 모든 첫 번째 경험이 일어난 장소다. 인간이 경험을 공간과 함께 기억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사랑한 가족과 처음으로 함께 논 친구가 첫 번째 집에 있다. 그래서 “열네 명이 기억하는 첫 번째 집의 풍경”은 “저마다” 다른 세계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고 한 인터뷰이가 말하듯이 첫 번째 집에 사는 한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른다.(<오준섭>, 99쪽) 아버지가 13층 아파트 발코니를 야생의 “밀림처럼” 가꾸어 비둘기가 둥지를 짓고 알을 나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아파트라는 공간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파트가 삭막하다는 말도, 사람은 땅과 가까이에 살아야 한다는 말도 그에게는 이해 못할 이야기다.”(<김민>, 253쪽) 첫 번째 집의 모든 것은 “원래 있던 것”이기도 하다. 유일하게 태어난 집에서 계속 살아온 인터뷰이는 자신의 집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한승희>, 105쪽) 차이를 경험해야 비로소 “설명할 말”이 생긴다. 태풍이 왔을 때 바람에 날려 집 옆 논둑에 떨어져 본 사람에게, “집의 풍경”은 무엇을 의미할까?(<박현태>, 57쪽)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1003/pimg_7629431832019516.jpg)
이 책의 핵심 문장은 이것이다. “집도 변화한다.” 가구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고, “시간이 흐르고 삶의 형태가 변하면서” 한 집이 두 집으로 나뉘고, 집이 클수록 집의 개별 기능이 별개의 공간으로 독립한다. 무엇보다 집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곳은 거실이다.
한국의 집에서 거실은 형태와 기능이 크게 바뀌어 왔다. 전통주택에서 오늘날 거실의 역할은 안방이 맡았다. 단독주택 양식이 들어온 뒤에도 한동안 안방이 거실로 쓰였다. “가족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상을 펴 다 같이 식사했다.”(<이수찬>, 77쪽) 1985년 부산에 지어진 한 상가주택은 아예 거실 없이 처음부터 안방이 거실을 겸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남명화>, 129쪽) 아파트가 들어온 뒤에도 사람들은 거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결정하지 못했다. “아파트가 도입된 초기에는 거실을 어디에 배치할지, 어떤 방과 가까이에 둘지, 무슨 용도로 사용할지 불분명했다. (...) 그래서 초기의 아파트에는 거실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진아 씨네 거실처럼 분리할 수 있게” 거실 입구에 문을 달았다.(<허진아>, 187쪽) 거실이 “집의 중심 공간”으로, 즉 “집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 다른 방으로 가려면 거실을 통과해야 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쓰이면서 문이 사라졌다. 하지만 거실은 여전히 가장 넓지만 가족 누구도 활용하지 않는 공간,(<라야>, 205쪽) 단순히 “생활하고 잠자는 공간” 즉 방으로 쓰이기도 한다.(<장재민>,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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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집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태어난 책이다.(<서문>, 7쪽) 열네 명의 사람이 자신의 집과 가족을 사랑하는 열네 가지 방식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나의 첫 번째 집을 사랑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