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홍신 엘리트 북스 64
에밀 졸라 지음 / 홍신문화사 / 1993년 11월
평점 :
절판


 

≪나나≫는 에밀 졸라의 대표작으로 1871년부터 1893년동안 쓰인 루공 마카르 총서의 아홉 번째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연작 형식으로 묶어서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전집류 속에 포함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디자인 면이 좀 떨어진다.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화제가 되면서 2009년에 다시 발매된 ≪테레즈 라켕≫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했다. 마음에 쏙 드는 번역본도 없기도 하고 많은 전집이 그렇듯 책 디자인이 허술하다. 루공 마카르 연작으로 묶어서 새로 근사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십수년 만에 다시 읽고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책을 읽었지? ≪나나≫를 처음 읽은 때는 10살 무렵의 일이다. 그 당시 나에게 이 ‘나나’라는 울림 자체가 귀엽고 친근해서 책을 뽑아들었던 것 같다. 이 ‘나나’라는 단어는 발음하기 대단히 편하고 외우기 쉽다. 이 이름은 ‘나나’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름이다. 부르기 쉽고 애교 넘치며 사랑스럽다. 소설에서도 도입부에 ‘나나’라는 이름을 듣고 그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 대해 묘사한다.

마침내 그 정체를 드러낸 ‘나나’는 오로지 ‘육체적 미’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집중하게 한다. 그녀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많은 이들이 ‘창녀’를 떠올릴 것이다. 여성에게 대단히 실례가 되는 이 표현이 ‘나나’에게는 잘 어울린다. 어렴풋한 기억에 어린 나는 이 책을 읽고 꽤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농밀한 육체표현이라던가 끊임없는 성애표현, 도덕이나 윤리보다는 돈과 쾌락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꽤나 자극적이었나 싶다. 이 따분한 소설이 어린 나에게는 별 제재 없이 읽는 포르노정도로 생각했나 싶어 우스웠다.

소설은 나나와 나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방탕한 생활이 끊임없이 반복한다. 에밀 졸라는 나나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적으로는 선량한 아가씨이며 이것이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 그 여자는 그 천성에 따르는데, 연민의 정이 많은 까닭에 결코 악을 위해 악을 행하지 않는다. 마음이 쉬이 변하고 정신은 항상 불안하며 한없는 변덕을 보인다.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 웃고 쾌활하고 미신적이고, 선량한 신을 두려워한다. 동물이나 친척을 사랑한다.’ 우습지만 나나는 정말로 그런 여자다. 질척하고 구질구질하고 비윤리적인 이들의 생활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것은 ‘나나’의 이런 보통 사람다운 점이다. 윤리고 도덕이고 무시하는 이 철딱서니 없는 여자를 완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게하는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이 ‘나나’의 본질 깊숙한 곳에 존재한다.

에밀 졸라는 500여쪽에 달하는 긴 소설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비도덕적인 관계, 그리고 그녀를 질투하는 여성들의 시선, 돈을 바치고 또 파산하는 남자들의 어리석은 모습만을 묘사한다. 원체 장면묘사가 세밀한지라 더 지루하다. 그러다 마지막 10여장을 남겨두고 갑자기 결말에 이른다. 이 어의없는 결말이 대장의 필력을 의심케도 한다.

나나는 천연두에 걸려 비참하게 죽는다. 그녀의 재능과 매력과 본성의 전부였던 아름다운 외모는 처참히 망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추파를 보내던 남자들은 두려움과 경멸 섞인 시선을 보내는데 반해 나나를 질투하던 여성들은 그녀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비눗방울이 툭 꺼지듯이 순식간에 정리되어버린 결말은 허망하지만 오히려 사실적이고 잔혹하다.  

이 소설을 본 많은 사람이 현대사회의 더러운 상황과 꼭 닮았다고 한다. 뒷말 많은 연예계, 성 접대, 불륜, 성적 유희, 머릿속이 본능으로만 가득 찬 사춘기 소년, 가정폭력, 사회적 분쟁, 재산문제, 아름다운 여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이리도 같을까.  

당시에는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책이지만 현재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이야기라는 인상도 준다. 다 커버린 나에게는 그저 뜨끈 미적지근할 뿐 강렬함은 자취를 감췄다. 그저 뭣모를 때 ‘나나’를 마냥 요부로만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그녀가 그저 한사람의 인간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는 뜨끈미적지근한 감흥을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의 거의 모든 책들이 그렇듯이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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