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의 황혼 - 마지막 황제 부의의 스승 존스턴이 기록한 제국의 최후
레지널드 존스턴 지음, 김성배 옮김 / 돌베개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많은 이들이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봤거나 최소한 어린 부의가 자금성을 배경으로 서있는 포스터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위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은 마르코 폴로 이후 처음으로 자금성에서 일하게 된, 영국인 사부(황제의 스승) 레지널드 존스턴이 자신의 경험담을 쓴 것이다.
 영국 식민정부의 행정관이었던 그가 신해혁명 이후 자금성에 유폐되어 있는 부의의 사부이자 친구가 되어 마지막 황제와 함께 중국 근대사의 격동기를 어떻게 넘나 들었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신해혁명 당시 황실을 대리한 원세개와 혁명 세력은 300여년간 중국을 통치한 청 왕조를 끝내고 중화민국을 세우기로 합의한다. 이는 자신이 황제가 될 야망이 있었던 원세개의 황제를 생각하지 않은 타협의 산물이었지만 그 결과 중국에는 공화정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마지막 황제 부의와 그 가족은 우대 조건에 의해 자금성 안에서만 지내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중화민국이란 공화정(절대 입헌군주제가 아니다.)의 대총통과 청(만주 제국)이라는 제국의 황제가 같은 베이징, 그것도 자금성 안에 공존하게 된다.

 아직까지 황제를 따르는 적지않은 보황파, 제정 세력이 존재함을 두려워 한 공화정 정부는 황제의 궁궐 출입을 막았고 그대신 부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외국인 스승으로부터 영어와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3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아버지의 섭정을 받으며 자신의 뜻을 펼치기도 전에 순식간에 중국 대륙의 황제에서 자금성의 황제로 전락하고만 그는 황제와 제국보다는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공화정부가 주는 우대조건에 만족한 자신의 신하들을 보면서 염증을 느끼고 존스턴과 함께 생활하며 영국 유학을 꿈꾸는 당시 서구에 매력을 느낀 중국의 지식인들과 다를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풍옥상에 의한 쿠데타로 자금성에서 쫓겨남으로서 자금성 탈출이라는 꿈을 이뤘지만 이후 공화파와 공산당의 살해 협박 속에서 텐진의 일본 조계지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러던 중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만든 만주국의 집정이 되었으나 말그대로 괴뢰 정부의 꼭두각시 황제였다. 2차 대전 후 만주로 진격한 소련에 체포, 후에 중국 전범관리소에서 수감되었다가 1959년 모택동의 특별 사면령으로 풀려나고 1967년 사망한다.

 존스턴이 그의 황제이자 제자였던 부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부의가 텐진의 조계지를 떠나기 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 작은 무인도에서 은거하며 매일 만주국기를 게양하며 제자의 안녕을 기원하다 1938년 사망했다고 한다. 

 '마지막 황제'를 보면 수용소장이 존스턴의 책을 읽으면서 부의를 추궁한다.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어 만주국의 황제가 되는 과정을 존스턴은 일본의 납치가 아닌 부의의 의지라고 써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부의는 강압에 의해 그랬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원래 자신들의 세력권이던 만주를 가져왔으니(책에서는 한족과의 결혼에 따른 '지참금'이라고 표현했다.) 한족들에 의해 청 제국은 멸망했어도 만주는 자신들이 지켜야 한다는 당시 청황실의 분위기를 볼 때 부의는 다시 선조들의 땅을 되찾을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고 만주로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존스턴 역시 자신의 제자가 일본 제국주의의 꼭두각시로 불행한 미래를 맞을 거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조언해주지 못했다. 

  시대가 평안할 때 태어났더라면 분명 성군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군주가 되었을 부의의 이야기를 읽으며 비슷한 역사를 기억하는 한국인으로서, 영국인 스승이 느꼈을 마지막 황제에 대한 연민에 공감한다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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