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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 중국 제국 시스템의 형성에서 몰락까지, 거대 중국의 정치제도 비판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서점에서 캠브리치 중국사를 뒤적이다가 '명나라는 무척 적은 비용으로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였다.' -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것이라 정확히 이런 글은 아니었고, 대충 이런 뜻이었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사회가 관료 조직을 운영하면서 적은 비용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데, 명제국은 군현제로 표현되는 거대한 관료 조직을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적은 비용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를 읽으면서 위 지문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이는 윤리치국이라 표현되는 '유가' 사상 덕분이었던 것이다. 공부하는 자는 관료가 되는 것이 꿈이기 때문에, 제국은 관료로서의 권한과 자부심을 주어 적은 월급을 주어도 되었기 때문에 그런 저비용이 가능했다. 생활도 못할 정도의 이런 저비용은 부패의 기미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문제시 될 수 있지만, 어쩄든 제국의 저비용 고효율은 오늘날에도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중톈이 제국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는 전 민중이 황제에게 충성하게 함으로써 내부적인 분쟁으로 인해 생기는 비용을 줄이고, 그 남은 역량을 외세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제국은 많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중앙집권(->황권강화추구가 가속화되면서 권력의 사유화로 인해 기반이 약화됨), 윤리치국(->진정한 윤리를 강조함이 아닌 체제 유지 수단으로 전락함. 권력자는 윤리를 따르지 않음), 관원대리(->통제가 제대로 안되고 결국 부패함) - 그 뛰어난 효율성으로 인해 600여년간 지속된 주의 봉건제도를 대처한 이래 무려 2000여년 동안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 구조가 되었다.
제목에서 말하다시피 책의 9할이 제국의 탄생과 특징에 대해 말하고 있고 또 장점 - 거의 동일한 분량으로 단점을 얘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 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하고 있음 불구하고 이중톈이 책을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중국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정치 체계는 공화, 민주, 법치 - 저자는 법치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이 있고, 법이 집행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계약에 의해 법이 제정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중국은 법제는 있었지만 법치는 없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 라는 것이다. 제국 이데올로기는 운영은 효율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위협이 될 수 있는사상, 과학 등의 발전을 막음으로써 중국이 뒤처지게 되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중국은 공화, 민주, 법치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외국의 사상을 이해하는데는 자신의 문화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또 중국의 실정에 맞는 공화, 민주, 법치를 이루어야한고 한다. 하지만 그 길은 아무도 모르고, 매우 멀어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이 글을 읽으면서 내내 공화의 필연성에 대한 저자의 설득이 조금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당연해서 짧게 언급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나가는 것처럼 짧게 사유재산과 자유의지, 인권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 임팩트가 크지 않다. 공화가 시대적 대세가 된 것은 청일 전쟁의 패배와 러일 전쟁의 결과로 인해 제국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와 서양식 공화주의 - 일본이 겉으로는 공화주의를 이룩하여 성공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 에 대한 동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서 이기고 싶은 열망 - 부국강병의 수단으로서 - 에서 시작된 아시아의 민주, 공화주의 열풍을 시대적 대세 그냥 받아들여야 하다면 매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관원대리로 인한 부패는 공화주의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일이니 제국에만 덮어씨우기는 억울한 면이 있다. 또 책에는 제국의 추악한 면을 많이 보여주지만, 또 한편으로 그 효율성과 질서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사실 효율성으로 따지면 민주주의는 전제주의를 따라갈 수 없다. 효율성이라는 것은 전제주의의 폭력성을 묻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아직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강한 유혹이 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중국과 비슷한 제도 - 특히 조선은 제국 구조를 거의 그대로 답습한 것 같다 - 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저자와 비슷한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이전 제도를 바라보고 이전 제도의 잔제를 고찰해 봄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함을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