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인간 복제를 두려워하는가?
그레고리 E. 펜스 지음, 이용혜 옮김 / 양문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생명공학에 대한 입장?>

생명공학에 대한 입장에 앞서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생명공학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먼저 생명에 대한 관점을 구분해 본다면, 생명에 대한 많은 정의와 논쟁들이 있겠지만 크게 범생명론적 관점과 범물질론적 관점에서 나누어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근대 이전에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범생명론은 온 세상이 살아있는 생명이고 죽음을 특이한 것으로 바라보았으며 죽음에 관한 많은 생각과 유물들을 남겼다. 그중에 종교는 대표적으로 범생명론에서 남긴 유물이며, 죽음에 대하여 극한까지 몰고나간 인간 사유의 결정체이다. 근대이후 범기계적-범물질적 세계관을 통해 인간은 모든 것을 물질과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우주 전체의 물질중에 생명만이 특이한 현상으로 남았으며 19세기 이후로 발달해온 기술에 의하여 생명현상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어 급기야 21세기에 생명의 복제라는 인류사적 이슈가 등장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생명에 대한 관점은 범생명론적 관점과 범물질론적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솔직히 최근에 생명에 관한 호기심으로 깊이 있게 공부해보기 이전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한쪽에 치우친 질문인 줄은 몰랐었다. 그 질문은 이미 범물질적 관점에서 이 우주는 죽어있는 물질로 구성되었고 그 중에서 ‘특이한 생명’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오히려 모든 것은 살아있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보편적인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어 상당히 놀랬다. 과정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길었지만 최종적으로 ‘생명은 물질의 특이한 현상’이라고 잠정적 결론(관심을 갖기 전에 가졌던 범물질적 관점의 편견이 양쪽을 균형있게 바라보면서 내심 내리는 결론으로 바뀜)을 내리고 생명공학에 대한 입장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명공학에 대한 입장은 위와 같은 생명에 대한 관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었다. 생명공학은 과거에 인류가 범생명론적 관점에서 죽음을 특이하게 생각하고 종교를 만들어낸 것과 동일하게 범물질적 관점이 지배적인 근대이후 범물질적 관점에서 특이한 현상인 생명을 탐구한 결과물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공학에 대한 종교적 반대입장은 단지 생명을 바라보는 범생명론과 범물질론이라는 관점의 대립에 불과하고 따라서 생명공학에 대한 인류사적 입장을 적절하게 도출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소모적인 논쟁일뿐이고, 현실적으로는 현재의 인류에게 종교가 가지는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다는 점만 남을 뿐이다.

따라서 생명공학에 대한 입장정리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관점대립의 반복이 아니라 인류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라는 것과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종교집단을 어떻게 설득하는가라는 점이다.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이 책은 내가 가졌던 이러한 생각을 적절하게 대변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고리 E. 펜스는 이 책에서 21세기 유전학의 화두를 소개하며 그 동안 유전학에 대해서 가져왔던 편견들을 하나씩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른바 기술적 언표인 ‘복제’에서 생활적 표현인 ‘무성생식’으로 과감하게 전진시켜 무성생식의 미래와 생식윤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슈들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복제에서 무성생식으로 표현을 밀고나간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복제라는 단어가 가지는 늬앙스 때문에 발생한 많은 오해를 적절히 피해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복제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불러오는 오해는 우선 완벽한 분신을 만드는 것으로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제를 통해 만들어진 사람은 엄밀히 말해 여러 면에서 유전자를 제공하는 성체와 정확히 똑같다고 말할 수 없다.

유전자 구조는 매우 비슷하다 할지라도 분자 차원에서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원자가 결합해서 분자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효소와 단백질을 형성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똑같이 출발한 두 배아도 분자 차원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한 화학자의 말을 예로 들면 인체에서 헤모글로빈 분자 두 개가 같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따라서 복제된 인체에서 마지막 세포 하나까지 동일할 확률은 사실상 제로인 셈이다. 두 개체가 복잡하면 할수록 정확하게 똑같을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세포로 형성되기까지는 분자가 수천 가지 방법으로 수천 번씩 결합해야 하기때문에 그 복잡성은 지수 단위로 변하게 된다.

복제에 대한 오해에서 또 다른 주범은 유전자결정론이다. 이 유전자결정론이 복제를 ‘성체의 복사’로 오해하는 이론적 근거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복제인간은 성장과정에서 완벽하게 결정된 경로를 따라 '성체의 복사'와 다를바 없는 결과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믿음을 제공한다.

이에 대하여 스티븐 제이굴드는 오히려 복제보다는 일란성 쌍둥이가 더욱 동일하다고 말한다고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엄격하게 인간의 정체성이 동일하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탈핵 난자에 삽입된 유전자형이 정확히 동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똑같은 모체 세포질(미토콘드리아), 같은 자궁과 자궁안에서 벌어질 똑같은 사건에 노출, 똑같은 부모, 역사상 똑같은 시간대와 지리학적 장소에서 그들을 키워야 한다. 더구나 가장 가까운 복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샴 쌍둥이인 엥과 창의 예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둘은 몸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성격적으로 한 명은 까다롭고 술을 좋아했지만 다른 한 명은 인자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유전자가 성체를 만드는 결정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유전자만 가지고서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마음'을 복제할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복제할 수도 없으므로 우리의 독특한 정체성을 보호된다. 따라서 복제된 인간이 원개체의 완벽한 복사본일 수는 없다. 인간 복제에 대한 일부 오해는 유전적 결정론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제에 대한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적인 일반의 오해는 공상영화의 장면들에 의하여 상상력이 제공되었다. 공상영화에서 묘사하는 복제는 복제인간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야 며칠 정도에 불과하고 성체가 된 복제 인간은 감정 없는 살인마가 되거나 복제된 여성은 키가 크며 날씬하고 아름답다. 또는 포유류를 복제한 과학자는 언제나 자신의 실험실에서 그 복제 생물에 의해 살해된다.

이렇게 오해하기 쉬운 문화적 배경이 있는 복제라는 단어를 이 책에서는 그레고리 E. 펜스 본인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책의 중간이후 무성생식의 문제로 화제를 돌려서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에서도 ‘인간복제의 문제’가 아니라 ‘무성생식의 문제’로 다루어 지고 언론의 표제에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진다면 많은 논란의 방향이 제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다. 유전공학에서는 기술적으로 배아든 체세포이든 복제라는 용어가 적합하지만 일반대중에게는 그 결과물인 자라난 성체가 직접적인 고려 대상이기때문이다.

먼저 복제에 대한 오해는 차치하고라도 복제라는 용어는 어떤 기술적 제3자에 의한 의도적인 개입과 불순한 의도를 상상하게 만든다. 공상영화를 통해 온갓 상상력을 훈련받은 대중들은 제3자의 개입과 의도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금방 결과를 예측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생활속으로 옮겨서 무성생식이라고 하면 그것은 개개인이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당면한 문제속에서 의료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상황이 바뀐다. 그리고 섹스를 통해 2세를 획득하는 것과 무성생식을 통해 2세를 얻는 것의 생활속에서의 차이를 비교하며 문제점과 장점을 발견하고 선택하려 할 것이다.

섹스를 통하지 않은 무성생식은 인류의 문화적 관습에 많은 혼란을 줄 것이다. 하지만 곧 인류 모두가 섹스를 통하지 않는 무성생식을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도 불임부부들은 거의 대부분 체외수정에 대해서 찬성을 하고 이제는 체외수정을 단지 의료적으로 도움을 받으면 극복되는 예외적 장애로만 받아 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부부들이 체외수정을 일부러 원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무성생식은 유전적 결함이 있는 부부들에게 그 결함이 최소화된 아이를 선택할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이것 또한 단지 의료적 도움을 받으면 극복되는 예외적 장애로 보게 될 것이다. 그레고리 E. 펜스는 무성생식에 관한 논란 또한 종교적 배경을 근거로 한 불합리한 반대논란으로 보고 그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비꼬며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체세포핵이식으로 태어나는 아기에 대한 소동이 모두 가라않고 나면 이것에 대한 반대는 오로지 종교인이나 전통적인 신앙심으로 물들여진 사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점은 미국 헌법이 종교적인 믿음에만 근거한 정책이나 법의 수립을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유전자조작에 의한 가축과 식량을 먹어도 될 것인가? 또는 배아복제를 통해 장기생산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가? 라는 주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인간복제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읽기이전에 유전자와 관련된 이슈는 막연하게 한 가지로 싸잡아서 생각했거나 사실 생각해 보지도 않았지만 결국 세가지의 구분된 이슈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이외의 다른 생물의 유전자 조작이 인간에게 유익할 것이냐라는 것과 인간의 무성생식문제, 그리고 인간의 배아복제를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신체기관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 인간복제 - 다시말해서 인간의 무성생식이란 문제를 아주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의 논리와 종교적 입장에 근거한 윤리들을 잘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복제와 관련된 많은 오해들을 적시하여 그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이슈에 대해서 사고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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