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의 키스
노엘 샤틀레 지음, 양영란 옮김 / 예담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자벨, 당신에게 먼저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이 지독히도 고독한 상태에서 약을 먹은 후,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아마 당신의 기자회견장에 모인 이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건은 당신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당신의 입을 주시하고 나였다면 참을 수 없는 정적, 눈짓을 보내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일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당신과 수술 전, 그리고 수술 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의료진들조차 당신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까지도 당신을 보호하려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작가인 노엘 샤틀레도 그들을 사려 깊고 세심한 백색의 보호막(p. 10)이라고 표현했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역경을 견디어 내고 싶어합니다. 한 차례의 고비, 위기를 넘기고 좀 더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후에 무용담처럼 인생의 후배들에게 잘 이겨낼 수 있는 방도를 알려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쉽게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지요. 겨우 스무해 남짓을 살아온 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역경을 견디어 내는 것 보다 어떠한 사건, 일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그것에서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함을 느낍니다. 대리만족도 아니고, 그저 우월감에 심취하는 것이지요.

 당신의 기자회견장에 모인 사람들은 당신이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왈칵 쏟기를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당신의 것이 아닌 입술로 말을 할 때 슬쩍 어색해하고, 혼란스러워하기를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의연했고 담담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당신의 수술 전후 사정이 원만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신의 모습은 멋졌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덮은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은 이유. 당신은 당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고 있었던 겁니다. 분명 혼자서 남모르게 흘렸을 눈물들이 숱하겠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신을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서 울지 말자 다짐을 했을 테고, 당신은 해냈습니다. 사람들이 어쩌면 당신의 좌절을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신의 내면은 사람들의 걱정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것이 아닌 당신의 입술로 물을 마시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애 첫 키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내면과 외면 모두, 당신이기에 생애 첫 키스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겠지요?)

 당신의 곁에서 당신을 진료했던 간호사는 첫 키스에 대한 궁금증에 사로잡힙니다. 당신의 남자친구가 당신에게 키스를 하며, 당신에게 키스를 하는 것인지 입술의 주인에게 키스하는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기우입니다. 당신의 성장한 내면은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할 것이고, 당신의 입술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떠올리는 남자를 만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성숙한 이를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요.

 나는 이자벨, 당신이 한 얼굴, 두 여자라는 난잡한 신문의 헤드라인과 같은 어구들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사람들의 걱정 아닌 걱정을 걱정해주며 살았으면 합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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