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 서양 음악사의 잃어버린 순간들
유윤종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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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이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작곡가와 연주가의 삶도 그렇다. 더군다나 음악 작품은 악보 속에 결정으로 굳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연주자의 손에 이끌려 공기를 흔드는 순간에 작품으로서의 ‘사회적 삶’이 시작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음악가의 투쟁은 한층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 중. 


보통 ‘예술가’라 하면, 화려한 삶을 상상하고 또 동경하기 마련이다. 이런 망각과 왜곡 뒤에 자리잡은 진실함을, 이 저자는 책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혹은 미처 몰랐던 사실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로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 보로딘의 딸이 “아빠, 나랑 피아노 쳐요”라고 묻자, “너 아직 피아노 칠 줄 모르지 않니?”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어린 딸은 “아니에요. 칠 줄 알아요!”라며, 피아노를 뚱땅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흔히 아는, 소위 피아노 못 친다는 사람도 이 곡 쯤은 쉽게 따라할 법한, 바로 ‘젓가락 행진곡’이다. 


보로딘은 ‘무한 반복’하는 이 단순한 패턴에 매료되었고, 이른바 ‘러시아 5인조’로 불리는 작곡가들과 함께 1879년 ‘커틀릿 폴카’라는 작품집을 완성한다. 이후 ‘피아노의 귀신’ 리스트 페렌츠가 이 프로젝트에 가세한다. 러시아의 지인으로부터 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보인 것이다. 당시 평론가들은 “리스트 같은 대가가 그런 허접한 일에 관심을 가졌을 리 없다”고 평가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20세기 초 이 곡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곡’이 되어 있었는데, 인터넷은커녕 라디오나 TV도 없던 시절에 대중에게 보급될 수 있던 이유까지 언급되어 있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기분이었다. 


이 외에도 대중에게 잘 알려진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 악보에 나타나는 암시부터, 떠는 소리인 ‘비브라토(vibrato)’가 사용된 유래까지. 보통 ‘클래식’을 떠올리면 따분하고 재미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음과 동시에 클래식과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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