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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그리스인 조르바 완독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선물 도서입니다.
지중해 남쪽에 자리잡아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의 크레타를 배경으로, 갈탄 광산을 운영하려는 주인공과 그가 고용한 일꾼 알렉시스 조르바가 함께 지내면서 벌어지는 일상.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다시 읽어 보게 되어 설레였습니다.
문학을 잘 알지 못했던 시기에 처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주인공 조르바 인생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참 지난 후에야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잔차키스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있는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인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상태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이고 이 개념에 따라 카잔차키스는 실존 인물인 조르바라고 하는 자유인을 소설로 변화시켰다고 작품을 소개합니다. 문학작품을 사유하는 힘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조르바를 만나러 크레타 섬으로 출발합니다.

p.22 나는 곡괭이와 산투르를 함께 다룰 수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두 손은 못이 박이고 터지고 일그러진 데다 힘줄이 솟아 나와 있었다.
“동양인 식도락가 같은 얼굴로 커피 냄새를 정성스럽게 맡았다.” 동양인 식도락가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인간은 뭘까요? 자유스럽고 거칠것 없는 조르바는 녹로를 돌리는 데 거추장스럽다고 자기 손가락을 자신이 도끼로 잘라버리고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나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은 천국으로 갈수 없다며 내세의 삶, 천국, 여자, 성직자 따위의 생각이 복잡하게 오고가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려는 듯이 나를 노려봅니다. 누구보다 신나게 즐기면서 일할 때는,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사람, 책무를 사랑하는 사람 그는 굴착 인부들에게 임무를 결정하고 임금을 지불 하는 일을 집행하고 나는 그와 보낼 몇 달이 내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을 예감했습니다. 나는 조르바와 지낼 행복을 헐값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매력적인 조르바는 점점 신비로운 인물임엔 틀림없습니다.
p.133 어떨 때는 격정적인 곡을 연주하는데,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삶이 아무 색깔도 없어 보이고 비참하게 보이고 덧없이 느껴져 숨이 턱 막힌다네. 어떤때는 비통한 곡을 연주하는데, 그러면 인생이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 같고 구원의 여지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네.
마을에 사는 늙은 여자와 놀아나고 젊은 시절엔 여러 외국 선장들과 이래저래 염문도 뿌리던 오르탕스라는 여자를 조르바는 그녀는 나의 부불리나라고 부르며 마음을 녹이게 되고, 갈탄 광산을 개발하던 중 갱도가 무너지는 위기에서 주위 공기의 낌새로 자신은 덫에 걸렸고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나혼자 살겠다고 뛰쳐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르바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먼저 구합니다. 이런 매력에 빠져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는지 모릅니다.
조르바가 들려주는 수많은 무용담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 서아시아와 북인도에서 많이 쓰이는 타현악기의 하나인 산투르에 꽂혀서는 결혼하려고 마련해둔 돈을 몽땅 털어 산투르를 사는 엉뚱한 면도 있습니다. 터키인 사부에게 무작정 달려가서는 산투르를 배운 뒤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시작하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크레타섬으로 오게 됩니다. 조르바는 늙수그레하지만 야성미 넘치는 외모와 풍채를 지닌 인물이라서 그런지 소설은 조르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조르바의 인생 이야기라고 보는게 더 정확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이의 인생 이야기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조르바의 이야기는 그의 평생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그의 자유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조르바를 읽었을 때는 술과 여자에 빠지고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조르바와 이성적이고 이론적인 책속에 '나'는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생기지만 미래보단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조르바의 모습은, 책 속의 진리에만 갇혀있던 책속에 '나'에게 생생한 삶의 체험이라는 자극을 주게 되며 조르바를 동경하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그는 산투르 악기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