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다. 알 수있는 방법도 없었다(수용소에는 오는 편지도 가는 편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실그때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전혀개의치 않고 아내 모습을 떠올리는 일에 나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나와 그녀가 나누는 정신적 대화 역시 아주 생생하고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이 말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 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있는 것이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견딜 수 있다.
특히 정신적 억압 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위험은 정신 위생학적인 의미에서 일종의잠수병과 같은 것이다. 깊은 물속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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