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이끄는 삶
마이클 하딘 지음, 이영훈 옮김 / 대장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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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독교 신학은 예수로 시작해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을 비폭력적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진노를 거두시고 사람들을 의롭다 칭하셨다는 전통적인 교리는 폭력적이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틀렸다.

 저자의 주장은 실로 충격적이다. 혼인잔치에 많은 이들을 초대한 왕의 비유에서 분노하는 왕은 하나님을 비유한 것이 아닌가? 악인에게 주의 저주를 쏟고 진노를 내려달라 기도하는 시편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나?

  마이클 하딘은 비유에 등장하는 왕은 응징으로 경멸하는 세상의 왕과 같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학대나 살인으로 그 왕의 폭력에 참여한다면, 그리하여 예수의 비폭력적인 메시지를 거부한다면 안쪽이 아니라 바깥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것(71p).

  저주의 시편 속의 희생 언급은 아벨의 것처럼 보복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 시편 저자가 가정하는 하나님에 대한 시각이 옳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는 없다(297p). 그의 "원수 같은 형제들"과 화해하고자 했던 요셉같은 희생자가 있다. 예수는 아벨과 같지 않고 요셉과 같다(299p)

  저자는 르네지라르의 모방적 현실주의를 인용하여 희생양을 만들어 내는 폭력적 문화를 지적하며, 비폭력(=용서)의 관점으로 성경 본문을 설명한다. 또한 예수의 복음이 우리의 모방된 욕구, 경쟁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주장한다.

  심판자 하나님의 이미지는 고통의 순간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는 것 같아 더욱 나를 괴롭게 했다. 또한 평탄한 삶을 살 때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이며 하나님이 특별히 나를 축복하신다는 우월감에 빠지게 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새리의 비유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럴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실제로 축복을 받는다. 심판은 자기 의에 선고된다(144p)

  하나님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신이 아니다. 폭력적인 세상을 항햔 하나님의 해결책은 비폭력(용서)이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용서의 삶을 보이셨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면 된다.

  저자가 비폭력의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할 때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저자의 핵심적인 사상과 그가 주장하는 메시지는 내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삶을 따라 비폭력(용서)를 선택해야겠다고 결단했다. 

  이 두꺼운 책과 씨름하는 동안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붙이느라 무척 힘이들었지만 나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좋아하는 몇몇 지성인들에게만 이 책이 읽히기 보다 진정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나같이 무지한 성도들이 이 분명한 진리의 메시지를 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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