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 49가지 짧은 이야기로 만나는 일상의 하나님
구미정 지음 / 꿈꾸는터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일상에서 만나는 하나님 이야기라니,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을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글들이었다.

 

최근에 나오는 기독교 서적들은

하나님과의 소통에서 오는 축복을

돈과 능력으로 산출하려고 노력한다.

하버드에 들어가라느니

아이비리거에 들어가라느니

..

그러나 어찌 우리네 인생이 그러랴,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마찬가지일텐데

평범한 일상속에서

하나님이라는 샘물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그것을 시도하고 목적으로 삼은듯 보인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속에서, 이미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따뜻한 감동과 촌철살인의 통찰력을 담은 근래에 보기드문 책이다.

 

초신자나 슬럼프에 빠진 기독교인에게 선물하면 초대박일것이다.

 

일상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상투적인 표현이면서도,

어려운 일인지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다 안다.

 

생태신학자 구미정 교수의

살림의 이야기. 소소한 일상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가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오고 가는 소소한 지하철의 일상에서

이책을 핀다면, 그곳이 하나님을 만나는 바로 그 장소가 되지않겠나.

 

 

--------

“어느덧 우리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사회 양극화에 대한 하나님 마음을 끌어 올린다. 혈루병 여인처럼 우리 사회의 변두리로 전락해버린 우리 이웃들을 예수의 마음으로 안는다.”
… 그런데 최근의 이랜드 사태를 보면서 뜬금없이 투명인간이 떠오른다. 이랜드 기업인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데모하는 아줌마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을 ‘찍순이’라 부르는 그들, 여섯 시간 동안 꼼짝 없이 서서 화장실에도 못 가고 바코드만 찍어대는 날이 수두룩한 그들, 그렇게 일해서 번 돈 80만원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살림에 보태고 아이들 학원 보내고…, 0개월 계약이니 비정규직 보호법이니 그런 거 몰라도 좋으니까 제발 일자리만 빼앗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하는 그들, 그들이야말로 투명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생글생글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붙박이처럼 제 자리를 지키며 서 있었다. 거의가 40대를 전후한 중년 여성으로, 중고등학생 자녀를 한 둘쯤 두고 있는 그들. 집에 가면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아내요 존경받는 어머니로서 어엿한 대접을 받고 있을 터였다.
… 아이러니하게도 투명인간의 구원은 그가 사람들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 여기, 우리가, 이렇게, 존재한다고, 눈물로 호소한 아줌마들의 절규가 하늘에 닿기를 빌어본다. 이 땅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아줌마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부디 그들의 고단한 삶과 소박한 꿈에 날개가 달렸으면 좋겠다.
아, 그보다는, 제발 기독교라는 이름이 더 이상 진흙탕 속으로 추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자들, 바로 우리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파업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 제1부. ‘혈루병 여인, 예수를 만나다’ 中. 「투명인간 살리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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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기독교를 위한 필독서. 교회에서 가르쳐주지 않지만 꼭 알고 있어야 할 도서들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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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開)독교를 위한 변명- 청년들이 달려가면서도 읽어야 할 책 1
꿈꾸는터 편집부 지음 / 꿈꾸는터 / 2007년 12월
10,500원 → 9,450원(10%할인) / 마일리지 5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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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네 이웃을 사랑하라.(A Story Of War)>, 피터마쓰 지음

이 책은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기사로 IMF를 예언(?)했던 <워싱턴 포스트> 기자, 피터마쓰가 쓴 책이다. 이 책은 1992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전쟁을 취재한 것들을 엮은 것이다. 피터마쓰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보여지는 전쟁 현상’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전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보스니아 사람들의 고통과 전쟁터의 ‘숨겨진 진실’을 전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했다.

이 책의 제목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인 이유는 세르비아 사람들과 보스니아 사람들은 본디 함께 어울려 살던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친구이던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살해됐다. 바로 전 해 가을만 해도 서로 도와가며 추수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사춘기 시절, 모험과 비밀을 서로 나누고, 무더운 여름날 밤에는 드리나 강에서 함께 알몸으로 헤엄도 치고, .......별 이유도 없이 이들은 갑자기 살인마로 변했다.」

피터마쓰는 보스니아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가장 당혹스럽게 느낀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떻게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이웃 사람에 대고 총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아내까지 강간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율이 아예 없다는 듯이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르다.”라는 결론을 내려야 그 모든 상황들이 납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학 학위를 갖고 있고, 시를 읽고, 알프스에서 스키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세르비아의 대통령 밀로쉐비치는 인간의 깊은 곳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야만을 끌어낸 것이다. 자신들은 이제 안전하며 야만행위는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 그 틈새를 이용한 것이다. 보스니아에서 인종청소는 계속되었고, 그 만행을 자행한 많은이들이 평화시에는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고 거실에는 소니 텔레비전을 갖고 있던 전직 변호사와 엔지니어 출신들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총독(히틀러)의 명령에 유태인 대학살 과정의 공무를 집행한 똑똑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둔한 인물로 종이에 손을 벤 것 외에는 손에 피를 묻힌 적도 없는 관료 였다”고 했다. 아렌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게을리 하고 히틀러나 스탈린 류의 인간들에게 이용당하는 이들을 악의 전형이라고 보았고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의했다.
악은 우리의 생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이러한 인간의 악의 평범성에 대비하기 위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모세의 율법을 “네 원수를 사랑하라”로 업그레이드 시켰는지도 모른다. 훗날 이웃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는 그는 이웃과 원수는 종이 한 장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피터 마쓰는 “나 자신이 <워싱턴 포스트>기자로 3년간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보스니아와 한국의 분단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점들을 찾을 수 있다. 어떻게 그토록 가깝던 이웃들이 그렇게 쉽사리, 또 광폭하게 갈라질 수 있으며 어떻게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보스니아 전쟁이 던진 이 질문은 한국에서도 중요하다. 보스니아 상처의 원인과 치유에 대한 이해가 커질수록 한국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국독자들에게 과제를 안겨 주었다.

실제로, 강북의 대형교회 중에 하나인 Y교회는 국내에서 북한선교가 가장 활발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대예배기도 시간에 이른바 ‘빨갱이’를 저주하는 내용의 기도가 선포되어지는 등 이웃과 원수의 경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과 원수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자 했던 예수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다. 이웃과 원수의 종이 한 장 차이의 극복 없이 한반도에 통일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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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독교사
사와 마사히코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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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국 기독교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일본 기독교사를 썼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기독교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 일방적으로 설명을 해주려는 나열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사와 마사히코의 일본기독교사는 쌍방을 소통시키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는 점이 눈에 띤다.
 
그는 역사적인 흐름속에서의 한국과 일본, 처한 상황이 ‘다름’ 가운데 ‘같은’ 기독교가 들어와 어떻게 변형되고 발전해 나가는지를 살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일본기독교史만을 다루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한국기독교史와 연결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사와 마사히코가 일본 기독교의 모습을 그릴 때, 한국 기독교의 모습까지도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와 마사히코는 일본 기독교사를 배경, 일본의 문화, 사상, 정치 등과 연관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일본의 시대별 사회현실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그리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1890년대부터 일본은 자본주의가 들어와 확립되기 시작했고, 전체주의적 구조속에서 사회빈곤은 더욱 악화되었다. 사회적인 양극화현상은 자선사업이나 사회복지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회 정의를 외치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일어났다. 제도적인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으나, 이들은 치안경찰법에 걸려 그날로 해산명령을 받았다.
 
기독교 사회주의운동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주류가 이와같은 운동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의 주류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회사 사무원, 기술자, 관리, 교사, 의사, 언론인 등의 지식인 계급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을 옹호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교회는 결국 ‘신앙만’,‘선교만’이라는 추상어 속에 자신들을 가두고, 사회문제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하려는 기독교 사회주의운동을 빨갱이라 규정하여 내쫓아버린 것이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가주의의 색채가 강한 일본 교회의 주류는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 모두가 전쟁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주장했다. 사와 마사히코는 교회가 전쟁협력으로 몸을 틀었을 때, 기독교를 떠나 사회주의로 가버린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설교시간에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전쟁을 정당화하여 전승을 비는 목사의 말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과거사 청산’이다. 아니 과거사 청산이 불가능하다면 ‘과거사 인정’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1967년, 약 20년전 서한의 당사자였던 일본기독교단은 <제 2차 세계대전하에서의 일본기독교단의 전쟁 책임에 관한 고백>을 발표함으로 전시 하에 교단의 이름으로 범한 과오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
 
이것은 교회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인 지지체계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하는 모습이다. 정치권력과 짝하던 모습을 사죄하며 진정한 교회로 거듭나겠다는 선포였던 것이다. 이것은 교회 차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할복이었다.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친일의 권력과 군부정권의 권력과 짝을 했던 과거의 기억을 여전히 향수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 볼 일이다.
 
일본 기독교인은 현재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세속적인 힘과 권력을 거세한 일본 기독교는 숭고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세속권력이라는 팔과 다리를 잘랐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 기독교는 썩어 악취가 풍기는 팔과 다리를 끈질기게도 끌고 다닌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닫힌 추상성에서 깨어나, 썩어가는 자신의 육신을 과감하게 베어버리는 일본 기독교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 기독교는 역사에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장으로 전체인구의 약 20%정도가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며, 일각에서는 ‘거품이 빠지는 중’이라며 이러한 추세를 반기기도 한다. 일본에 기독교인의 비율이 1%밖에 안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향한다.
 
그러나 일본의 1%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인은 거품이 빠질 때로 빠진, 순도100%의 기독교인이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무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목사직은 3D업종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이래저래 양적성장보다는 질적성장에 힘을 쏟아야 할 거품 가득한 한국 기독교가 순도 높은 일본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는 작업은, 우리의 나아갈 길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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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開)독교를 위한 변명 - 청년들이 달려가면서도 읽어야 할 책 1
꿈꾸는터 편집부 지음 / 꿈꾸는터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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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 기독교가

이런 이념에 따라서 이쪽이고 저쪽이고 라인을 타기 시작했다.

 

저마다 예수는 진보주의자였을 것이네

아니다 보수주의자였을 것이네 말하면서

진짜 기독교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의 입맛에 맞게 예수를 요리하다보니

어느덧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기독교나 진보기독교할 거 없이

서로의 책임을 미루고만 있으니

참 우울한 중에...

 

우연히 이 발칙한 책을 발견하게 되어 읽게되었는데.

이 책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잡탕밥인데

오히려 예수의 복음을 더 잘 담아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솔직했기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에는 외국에서 공부하다 온 세계적인 석학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보수니 진보니 자신들의 영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바보가 된다.

 

할 이야기를 못하는 것은 이미 예수가 아니요, 복음이 아니다.

보수가 꼴통이란 말을 듣고

진보는 깡패란 말을 듣는다.

하하

 

이 책은 진보니 보수니 특정 렌즈에 세뇌당하지 않은

순수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고

내10년간의 체증이 뚫리는 듯 하였다.

 

성문제, 교회문제, 사회문제를 다루어간

이 변방의 청년6인(어디서 나왔는지 모를)들의 솔직한 목소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 개독교인, 사회인들이 읽어야할 책이다.

 

참말로 달려가면서도 읽어야할 책이다.

대견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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