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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독교사
사와 마사히코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5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국 기독교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일본 기독교사를 썼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기독교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 일방적으로 설명을 해주려는 나열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사와 마사히코의 일본기독교사는 쌍방을 소통시키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는 점이 눈에 띤다.
그는 역사적인 흐름속에서의 한국과 일본, 처한 상황이 ‘다름’ 가운데 ‘같은’ 기독교가 들어와 어떻게 변형되고 발전해 나가는지를 살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일본기독교史만을 다루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한국기독교史와 연결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사와 마사히코가 일본 기독교의 모습을 그릴 때, 한국 기독교의 모습까지도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와 마사히코는 일본 기독교사를 배경, 일본의 문화, 사상, 정치 등과 연관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일본의 시대별 사회현실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그리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1890년대부터 일본은 자본주의가 들어와 확립되기 시작했고, 전체주의적 구조속에서 사회빈곤은 더욱 악화되었다. 사회적인 양극화현상은 자선사업이나 사회복지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회 정의를 외치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일어났다. 제도적인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으나, 이들은 치안경찰법에 걸려 그날로 해산명령을 받았다.
기독교 사회주의운동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주류가 이와같은 운동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의 주류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회사 사무원, 기술자, 관리, 교사, 의사, 언론인 등의 지식인 계급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을 옹호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교회는 결국 ‘신앙만’,‘선교만’이라는 추상어 속에 자신들을 가두고, 사회문제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하려는 기독교 사회주의운동을 빨갱이라 규정하여 내쫓아버린 것이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가주의의 색채가 강한 일본 교회의 주류는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 모두가 전쟁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주장했다. 사와 마사히코는 교회가 전쟁협력으로 몸을 틀었을 때, 기독교를 떠나 사회주의로 가버린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설교시간에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전쟁을 정당화하여 전승을 비는 목사의 말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과거사 청산’이다. 아니 과거사 청산이 불가능하다면 ‘과거사 인정’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1967년, 약 20년전 서한의 당사자였던 일본기독교단은 <제 2차 세계대전하에서의 일본기독교단의 전쟁 책임에 관한 고백>을 발표함으로 전시 하에 교단의 이름으로 범한 과오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
이것은 교회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인 지지체계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하는 모습이다. 정치권력과 짝하던 모습을 사죄하며 진정한 교회로 거듭나겠다는 선포였던 것이다. 이것은 교회 차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할복이었다.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친일의 권력과 군부정권의 권력과 짝을 했던 과거의 기억을 여전히 향수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 볼 일이다.
일본 기독교인은 현재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세속적인 힘과 권력을 거세한 일본 기독교는 숭고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세속권력이라는 팔과 다리를 잘랐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 기독교는 썩어 악취가 풍기는 팔과 다리를 끈질기게도 끌고 다닌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닫힌 추상성에서 깨어나, 썩어가는 자신의 육신을 과감하게 베어버리는 일본 기독교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 기독교는 역사에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장으로 전체인구의 약 20%정도가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며, 일각에서는 ‘거품이 빠지는 중’이라며 이러한 추세를 반기기도 한다. 일본에 기독교인의 비율이 1%밖에 안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향한다.
그러나 일본의 1%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인은 거품이 빠질 때로 빠진, 순도100%의 기독교인이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무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목사직은 3D업종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이래저래 양적성장보다는 질적성장에 힘을 쏟아야 할 거품 가득한 한국 기독교가 순도 높은 일본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는 작업은, 우리의 나아갈 길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