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박건웅 지음, 님 웨일즈 외 원작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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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만 보고 상상하던 내용이 그래픽노블로 표현되니, 좋다. 송오브아리랑뿐만 아니라 김산 관련 다큐, 김산 평전 등을 참고한 흔적이 보여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도 알겠다. 그런데 별5개가 아니라 3개인 이유는? 좋은 작가라는 건 알지만 쉽게 펼쳐 볼 수 있는 그림체는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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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다운 돼지 - 미치광이 농부의 흥하는 농장
조엘 샐러틴 지음, CR 번역연구소 옮김 / 홍성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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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육식 반대가 아닌, ‘창조‘의 결 속 ‘(동물)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 먹되, 어떤 마음으로 먹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기독교적인 유니크한 관점이 백미였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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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년 후 - 슬램덩크, 여전히 설레는
민이언 지음, 여는 그림 / 봄스윗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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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글거림. 출판사 책 소개에 굳이 일본 <소년점프>를 언급할 필요가 있었나. 한국 독자들은 <소년챔프>를 봤을텐데. 이런 식으로 편집과정에서 ‘겉멋’이 많이 들어간 책. 철학 개념들 많이 드러냈다고 하는 데 더 담백했으면 좋았을듯. 철학자 몰라도 슬램덩크를 즐기던 그 시절 우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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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노블로 만나다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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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의 말이 왜 한나 아렌트 앞에서는 작업멘트로 전락하고야 마는가. 자존심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처럼 찌질해지는가. 아렌트는 꽤 유명하지만, 어쩌면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면 더 많은 성과와 명예를 얻지 않았을까. 커피와 담배가 땡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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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 - 사랑과 사회의 재발명을 위하여
윤호.주은 지음 / 아토포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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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야기는 싫은데. 15년 전 미우라 아야꼬의 《길은 여기에》를 읽은 이후, 아픈 사람이 나오는 책은 보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는 읽어나가는 게 너무 힘겹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렇게 아파‘버릴까’ 봐 겁나는 것이다. 표지그림의 오묘한 분위기에 휩쓸려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읽는 중에도 몇 번씩 ‘지금이라도 덮을까’ 했다. 결국 왕복 6시간 KTX 열차 안에서 완독해‘버리고야’ 말았다.

 

끝내 읽을 수밖에 없었던 힘,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폭로되고 있다는 묘한 부끄러움에서부터 나왔다.

 

“새삼 몸이 경이로웠다. 삶이란 결국 몸으로 사는 것이고 몸에서 사는 것이었다. 삶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게 당연했다. 원래 몸대로 살아질 뿐이었다. 몸이 곧 나다. 이 당연하고 단순한 사실에 전율했다. 암에 걸리기 이전에는 몸이 그토록 중한 줄 몰랐다. 아니, 몸의 중함 같은 것을 애써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73쪽)

 

내가 몸(건강)과 관련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건강검진을 받은 후부터다. 당뇨 소견. 꽤 심각한 수치였다. (물론 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결과를 받아든 것이 아이를 낳은 직후였기도 했고,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나를 뒤흔들었다. 처음으로 ‘죽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죽기 싫다’는 그 생각자체가 나를 놓아주지 않을 때 생기는 여러 엇박자들. 그 부자연스러움.

 

“사느냐 죽느냐 그것도 문제일 테지만, 정작 나의 문제는 그 둘 사이에 낀 그 상태였다. 삶과 죽음이 똑같은 확률로 내 앞에 놓여 있다면 나는 삶을 준비해야 할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125쪽)

 

나는 단식과 운동을 병행하며 어느 정도 혈당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약 1년이 걸렸다. 1년의 시간은 부자연스러운 시간이었고, 트라우마를 점점 더 깊이 새기는 기간이었다. 나는 ‘정상’ 수치에 집착하게 되었다. 혹시 더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몸의 작은 변화가, 심장 박동 같은 것들이 더 크게 들렸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느닷없이 출현하는 구더기들을 마주해야 했다. 간혹, 그러니까 늘 그런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그랬다. 지하철을 탈 때면 대구지하철 참사가, 마트나 백화점에 들를 때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떠올라 거기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면 그곳이 너무 답답했다. 미칠 것 같이 가슴이 조여오고 심장이 터지는 듯했다. 그곳을 벗어나 한참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다.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 일도 없이 멀쩡하리라는 생각도 되뇌었지만 몸과 마음은 그런 생각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이런 공황상태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자주 밤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불면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 며칠 밤을 그렇게 연달아 보내면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처럼 무서웠다.” (169쪽)

 

무서움의 근원은 ‘어찌할 수 없음’, ‘통제할 수 없음’의 영역에서 온다. 나는 문득 내 몸을 내가 콘트롤할 수 없음을 깨닫고, 깊은 절망에 빠져든 것이다.

 

왜 나는 갑자기 유행이 한참 지난 <진격의 거인>이 떠올랐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거인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거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으로 시작해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파악하려는 시도들을 해왔다.

 

왜, 거인은 인간마을을 짓밟고 인간을 잡아먹는가? 인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막아보지만, 진격하는 거인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다. 거인과 소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 타협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는 늘 ‘진격하는’ 존재다. 나를 파괴하기 위해 거침없이 돌진해오는 존재. 인간은 그 돌진 앞에 어찌할 수 없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이런 ‘진격의 거인’ 같은 존재는 오직 ‘나’뿐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거인의 돌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 거인은 나의 원죄가 잉태한 것이며 내 삶을 양분삼아 자라난 괴물이기에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존재다. 나는 그 앞에서 무참하게 휘둘리는 존재다.

 

나뿐일까? 거인의 진격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치명적 무너짐을 경험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거듭 〈진격의 거인〉이 생각난 이유는, 저자를 비롯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무너짐과 붕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알아도 어찌 방법을 모색할 수 없다.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하던 거인은, 갑자기 의식 세계로 떠올라 어항 속 물고기를 놀래키듯 툭툭 어항을 휘젓다가 숨어버린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설프게 소통, 타협, 극복, 치료를 시도하다가는 잡아먹히고야 만다. (의사이자 심리학자였던 칼 융은, 살아가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거인)에 직면했을 때 이를 회피하면 질병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우리는 거인을 이길 수 없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는 거인의 비명만이 메아리친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시,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주은은 나를 벌하지 않았으며 버리지도 않았다. 그 처참한 실패에서 오히려 구원이 열렸다. 그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 새로운 것이 나의 시간에도 찾아오게 되었다. 우리는 혼인의 서약을 하고 미래라는 무한히 새로운 시간을 기적처럼 맞이했다.” (221쪽)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고통과 구원의 무한 굴레이다. 그 굴레의 원운동이 만드는 힘은 ‘고통의 공동체’(245~)를 꾸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들의 고통 이야기에 나의 고통이, 그들의 치유 이야기에 나의 치유가 공명한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고통이 나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본다. 나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조각들이 어지럽게 기워져 있다. 어쨌든 이것은 내가 새로 지은 나의 이야기이며, 주은의 고통으로 함께 직조한 우리의 이야기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도 누군가의 치유 이야기에 덧댈 작은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266쪽)

작은 조각을 덧대어 사는 사람들, 고통을 잇대어 사는 사람들. 고통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 그대는 갖고 있는가? 

 

 

* 아픔(질병/장애)의 사회적 이해에 관해 더 읽으면 좋은 책으로는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 대한민국에서 질병과 장애는 어떻게 죄가 되는가》(김민아 지음)를 추천. 몸의 철학적 이해에 관해서는 최근 나온 《아픔에 대하여》(헤르베르트 플뤼게) 등 추천. 그러나 이 책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가 단연 깊고 강한 울림을 준다. 

"그들의 고통 이야기에 나의 고통이, 그들의 치유 이야기에 나의 치유가 공명한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고통이 나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본다. 나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조각들이 어지럽게 기워져 있다. 어쨌든 이것은 내가 새로 지은 나의 이야기이며, 주은의 고통으로 함께 직조한 우리의 이야기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도 누군가의 치유 이야기에 덧댈 작은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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