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네 이웃을 사랑하라.(A Story Of War)>, 피터마쓰 지음

이 책은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기사로 IMF를 예언(?)했던 <워싱턴 포스트> 기자, 피터마쓰가 쓴 책이다. 이 책은 1992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전쟁을 취재한 것들을 엮은 것이다. 피터마쓰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보여지는 전쟁 현상’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전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보스니아 사람들의 고통과 전쟁터의 ‘숨겨진 진실’을 전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했다.

이 책의 제목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인 이유는 세르비아 사람들과 보스니아 사람들은 본디 함께 어울려 살던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친구이던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살해됐다. 바로 전 해 가을만 해도 서로 도와가며 추수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사춘기 시절, 모험과 비밀을 서로 나누고, 무더운 여름날 밤에는 드리나 강에서 함께 알몸으로 헤엄도 치고, .......별 이유도 없이 이들은 갑자기 살인마로 변했다.」

피터마쓰는 보스니아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가장 당혹스럽게 느낀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떻게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이웃 사람에 대고 총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아내까지 강간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율이 아예 없다는 듯이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르다.”라는 결론을 내려야 그 모든 상황들이 납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학 학위를 갖고 있고, 시를 읽고, 알프스에서 스키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세르비아의 대통령 밀로쉐비치는 인간의 깊은 곳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야만을 끌어낸 것이다. 자신들은 이제 안전하며 야만행위는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 그 틈새를 이용한 것이다. 보스니아에서 인종청소는 계속되었고, 그 만행을 자행한 많은이들이 평화시에는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고 거실에는 소니 텔레비전을 갖고 있던 전직 변호사와 엔지니어 출신들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총독(히틀러)의 명령에 유태인 대학살 과정의 공무를 집행한 똑똑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둔한 인물로 종이에 손을 벤 것 외에는 손에 피를 묻힌 적도 없는 관료 였다”고 했다. 아렌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게을리 하고 히틀러나 스탈린 류의 인간들에게 이용당하는 이들을 악의 전형이라고 보았고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의했다.
악은 우리의 생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이러한 인간의 악의 평범성에 대비하기 위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모세의 율법을 “네 원수를 사랑하라”로 업그레이드 시켰는지도 모른다. 훗날 이웃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는 그는 이웃과 원수는 종이 한 장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피터 마쓰는 “나 자신이 <워싱턴 포스트>기자로 3년간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보스니아와 한국의 분단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점들을 찾을 수 있다. 어떻게 그토록 가깝던 이웃들이 그렇게 쉽사리, 또 광폭하게 갈라질 수 있으며 어떻게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보스니아 전쟁이 던진 이 질문은 한국에서도 중요하다. 보스니아 상처의 원인과 치유에 대한 이해가 커질수록 한국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국독자들에게 과제를 안겨 주었다.

실제로, 강북의 대형교회 중에 하나인 Y교회는 국내에서 북한선교가 가장 활발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대예배기도 시간에 이른바 ‘빨갱이’를 저주하는 내용의 기도가 선포되어지는 등 이웃과 원수의 경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과 원수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자 했던 예수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다. 이웃과 원수의 종이 한 장 차이의 극복 없이 한반도에 통일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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