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Cafe 알파 14 - 완결
아시나노 히토시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SYNOPSIS
 원인 불명의 대이변으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여 육지가 바다 속으로 천천히 잠겨가는 머나먼 미래.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 로봇이 활보하는 세상이지만, 육지가 바다로 잠겨가는 건 막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름 바쁜 와중에서도 사람들은 세상사를 초탈한 듯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살고 있다.
 일본의 한적한 시골길에 위치한 '카페 알파'라는 이름의 커피샵 주위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특히, 주인이 가게를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커피샵의 지배인이 된 여성로봇 알파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풍부한 감정과 감수성을 지녔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로봇인 그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이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말했듯이,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에 고정되어 있는 알파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코하마 매물기행"은 1994년 일본 고단샤의 월간잡지 '애프터눈'에서 연재되기 시작한 히토시 아시나노(요코하마 매물기행이 그의 데뷔작이며, 다른 활동은 일체 보이지 않고 있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만화 단행본에 늘상 나오는 작가의 인사말에서도 자신의 신상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의 SF만화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SF만화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미래적인 도시와 최첨단의 운송수단과 기계장비 대신, 요즘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주택들과 잡초가 수북하게 자란 초원과 푸른 바다가 등장하며, 다 부서지다시피한 도로 위를 지하철과 자동차들이 털털거리며 달린다. 오히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지금보다 더 많이 후퇴한 느낌.
 사실 이 만화 속에서의 세계관은 곰곰히 따져보면 상당히 비관적이다. 원인 불명의 대이변으로 육지가 바닷속으로 잠겨가면서 인간이 살아갈 생활터전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사라져가고 있기 떄문이다. 인류의 멸망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그러나 이 만화에는 종말론적인 색채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게 뭐 어때서?' 하고 심드렁하게 묻는 듯, 세상사로부터 초탈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마지막을 앞에 두고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전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 시골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롭기만 하다.
 주인공인 알파의 경우도 마찬가지. 알파는 커피샵을 운영하고 있지만, 원채 한적한 곳이라 손님은 근처에 사는 이웃사람들 이외에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씩 온다. 가게 커피의 80%는 알파가 다 마실 지경이라고 자기 입으로 토로할 지경이다. 알파는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 로봇이긴 하지만, 사람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사람보다 감수성이 더 풍부하다.
 요코하마 매물기행은 주인공 알파의 시선을 따라 문명의 황혼기로 접어든 세상의 모습을 관조적이고도 사색적으로 묘사한다.
 한 페이지가 지나가기 무섭게 숨가쁜 액션과 신속한 스토리 전개가 휘몰아치는 만화들과는 달리, 여백의 미가 느껴질 듯한 그림과 이야기로 진행되는 요코하마 매물기행의 이야기 전개는 대단히 느리다. 깔끔하고 귀엽기는 하지만 뛰어나게 잘 그린 그림체도 아니고,(그러나 컬러로 채색된 그림은 참 깔끔하고 예쁘다.) 그림에 비해 대사와 내레이션도 많지 않으며, 등장인물들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이렇다 할 사건이나 갈등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요코하마 매물기행은 SF로서의 성격보다는 수필로서의 성격이 더 짙은 만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수필로서의 성격이 짙다고 해서 SF로서의 성격이 전혀 안 보이는 건 아니다.
 주인공 알파부터가 고도의 인공지능 로봇이다. 약간은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말고는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고 언뜻 봐서는 인간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세심하게 만들어진 로봇이다. 그리고 웬만한 구름보다 훨씬 큰 미지의 비행선 타폰이 소리 없이 언제까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초인적인 운동능력을 지녔으며 어린이를 무척 좋아하는 정체불명의 야생인간 미사고와 공중을 날아다니는 물고기 카마스 등 독특하게 진화한 동식물들이 간간히 등장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배경요소들의 일부일 뿐,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만화 되게 재미없겠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런 면이 요코하마 매물기행의 매력이다. 다른 만화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느긋한 여유. 느릿느릿 스쳐지나가는 일상에서 삶의 진리를 찾는 철학적인 사색들, 소소하지만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들과 여러 감정들. 그것이 요코하마 매물기행의 진정한 매력이다. 일본에는 흔히 말하는 "치유계 만화"의 대표작으로서 많은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고, 국내에서도 '카페 알파'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이 발매되었으며 적지 않은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2부작 OVA 애니메이션도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원작의 코믹함은 많이 희석되었다.
 지난 2002년에 두 번째 OVA 시리즈인 "요코하마 매물기행: Quiet Country Cafe"가 2부작 완결로 제작되었는데, 카페 알파가 태풍으로 부서지고 알파가 1년간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다루었다. 파스텔 톤의 색감과 캐릭터 작화 면에서는 OVA 1기보다 더 나아졌지만, 1기보다 단순화된 색 구성과 단순히 늘어놓기만 한 것처럼 에피소드 구성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1기보다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요코하마 매물기행이 지난 2005년에 전 14권으로 완결되었을 때에는 이 만화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14권에서 갑자기 훌쩍 건너뛰어 버린 세월의 간극이란……. 왠지 조금 급하게 마무리를 지으려는 조급함이 느껴졌달까.
 무엇보다도 아쉬운 건 아직 이 만화 속에 감추어진 SF적 발상의 미스터리가 전혀 밝혀진 게 없다는 것이다. 지구는 왜 바다에 잠겨가는 것일까? 우리의 과학상식을 무시하는 희한한 동식물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닜을까? 건물처럼 생긴 거대한 백색 구조물과 사람처럼 생긴 하얀 버섯(?) 덩어리를 비롯하여 지구 곳곳에 퍼져 있는 하얀 덩어리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미사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고 왜 어린이만 좋아하는 것일까? 이들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미사고에 관한 이야기만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듯 아주 잠깐 나올 뿐이다. 이들 모두가 다 밝혀지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작가가 조금은 귀뜸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만화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이 만화의 성격상 다 밝혀지길 기대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만화를 대여점에서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SF나 액션 장르의 만화를 즐기던 나에게 이 만화의 편안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책장을 넘긴 순간 상쾌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본작의 매력에 반해 버린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1, 2권을 빌려가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고, 그 다음날 바로 만화도서 도매점으로 달려가서 당시까지 발매된 단행본 모두를 질러 버렸다. 지금은 14권 전권을 침대 머리맡에 쌓아놓고 가끔씩 페이지를 넘겨보며 흐믓함에 젖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이 만화를 접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1권이 나온 지는 벌써 10년을 바라보고 있고, 만화책 전문 도매점을 뒤지거나 인터넷 서점을 뒤져야 겨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 팬들이 있기는 하지만, '데스 노트'나 '나루토' 같은 인기만화에 비할 바는 아니다.
  만화가 완결되었으니, 이제 이 만화의 편안한 여유를 달리 새롭게 접할 기회는 사라졌다. 아쉽기는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책의 소유자에게 그대로 남을 테니까. 혹시나 이 만화를 접하게 되거든 주저하지 말고 집어드시길 바란다. 만화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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