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누리는 예수님과의 사귐 - 하용조 목사의 요한일서 강해
하용조 지음 / 두란노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요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어머니에게 “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던, 그렇게 믿고 사랑했던 제자 요한.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복음 19:26)


그 사랑의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서신.

그리고 비록, 지금은 이땅에서 볼 수 없지만,

평생 질병의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불태우셨던 하용조 목사님.

그 분의 설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서신은 요한복음처럼 과거의 역사를 다루거나 요한계시록처럼 미래의 소망을 다루기보다는 오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이루어야 할 승리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p.8


이 책은, 예수님을 처음 영접한 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확신을 갖게해주고,

습관을 좇아 형식적으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시켜주는 귀한 책입니다.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싶은 구절들,  발췌합니다.

 


PART 1. 빛에 거하는 사귐


그리스도의 중심의 삶이란 구원의 확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구원의 확신은 신앙의 뿌리와 같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그리스도 중심의 삶,

성령충만한 삶이 유지됩니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구원의 확신에 흔들림이 없습니까? p.10


<구원의 확신을 나타내는 네 가지 현상>

1. 전도에 대한 열망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감격과 흥분이 없고, 그 분을 증거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2.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심히 생깁니다.

말씀을 받은 자는 예수를 받은자입니다. 예수를 받은 자는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 앞에 단 한사람이 앉아 있어도 뜨겁게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3.예수님 안에서 교제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피와 살을 나눈 형제로서 참 신앙고백을 할 때 진정한 만남과 사귐이 이루어집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나누는 사귐이 있을 때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4.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이 기쁨안에 평안이 있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있고, 찬양이 있습니다.

이런 기쁨 을 가진 사람들에겐 천국의 비밀과 확신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참 기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감옥안에서도 기뻐했습니다.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기쁨을 소유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이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사귐에서 옵니다. 사귐이 없는 사람에겐 기쁨이 없습니다.  p.27-31 요약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보게 하는 귀한 메세지였습니다.

예수님을 오래믿으면, 구원의 감격이 식어진채,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믿고 있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다시금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회복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도의 열정과 마음속에 샘솟는 기쁨과 평안은, 예수님과의 사귐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구원의 확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구원의 확신도 없습니다.

요한일서 전체를 보면 ‘죄’ 라는 단어가 20번도 넘게 나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요한일서가 죄의 문제를 얼마나 깊이 다루고 잇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죄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희미하거나 없을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p.36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1:5)

하나님은 빛이요 사랑이십니다. 요한서신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두 가지 주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보다도 빛이 앞에 나옵니다. 이는 빛이 있기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p.38

 

빛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사귐이 있습니다. 그리고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예수의 피로 깨끗이 됩니다.

이 빛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이룹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만이 진정한 사귐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p.40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 자기의 허물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죄를 짓는것보다 더 나쁜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빛의 자녀란 회개하는 자요, 예수의 보혈을 믿는 자요,

예수의 보혈을 체험하는 자요, 내 안에 죄가 씻기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죄가 씻겨져도 또 죄를 짓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하고 성화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p.41

 

죄를 자꾸 지으면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원의 감격과 기쁨과 확신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지으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신앙이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마귀와 싸워 이기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삶을 산다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끊이지 않습니다. 날마다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능력이 임합니다. p.52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세가지 방법>

첫째,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신것과 생명의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것.

그분을 믿으면 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분이라는것.

둘째,그리스도인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계명이 지켜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그리스도인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어야 합니다.

계명과 말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계명은 구체적이고 확실한 명령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계명을 포함한 더 넓은 범주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앙의 첫 단계에서는 분명한 계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하라, 하지마라'

라는 계명을 단순히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므로 말씀 전체를 스스로 지키게 됩니다. p.53-59 요약

 

매일 매일 하는 성경묵상은 신앙의 날을 갈고 닦는 도구가 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날이 날카롭게 갈리면 죄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로써 순간순간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결정을 하게 되고 우리의 생각과 입술을 자제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는 자가 되거나, 성경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준비하면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p.61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성경전체를 꿰둟는 메시지입니다.(중략) 우리는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교회를 나서 일상생활로 돌아가서도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p.69

 

처음 예수님을 접하고 교회에 나온 초신자들이 교회에서 따뜻함과 형제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이 위선적이며 아직도 미성숙한 단계에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교회에 교인들이 얼마나 모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 건물이 크냐 작으냐는 문제가 안됩니다. 그 안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라는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p.73

 

무엇을 생가가혹 어디를 바라보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의 영적 생활,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세상을 등지고 세상것들을 무조건 피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세상속에 뛰어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돈이 무조건 나쁘고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돈은 아주 잘 사용해야 합니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섬기거나 사랑하거나 이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여기에 목표를 두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우리 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없습니다. p.83

 

<마귀가 우리를 붙드는 방법 세가지>

첫째, 육신의 정욕입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단순한 생리적 욕구를 넘어섭니다. 인간의 육신속에 있는 정욕은 죄악적인 욕망입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보는 데서 생기는 욕망입니다. 죄는 보는데서 시작됩니다.

셋째, 이생의 자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생이란 현재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현재의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고픈 허영심이 바로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안에 은밀히 내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재물과 명예와 소유를 자랑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놓고 자랑하기도 하고, 은근히 돌려서 자랑하기도 합니다. 자랑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남에게 인정받고픈 욕구, 자신을 드러내서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욕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외모, 재산, 자식의 출세, 심지어 애완견까지 자랑거리가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자랑을 하다보면 부풀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서 과장하여 자랑합니다. 자랑은 우리의 스스로를 속이는 족쇄가 됩니다. 이렇듯 허영심의 노예가 된 우리는 어느새 마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껍데기만 화려할 뿐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p.88

 

우리에게는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p.90

이생에서의 성공이 영원한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고,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오직 충성하고 사랑하고 헌신하여 후회없이 하나님이 기억하실 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히 남는 삶입니다. p.92

 

우리가 세상안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을 사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것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우리의 순례행진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p.94

 

날마다 주 안에 거하는 사람은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살면 우리의 삶을 사탄에게 내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p.107

 

 

 

PART 2. 사랑에 거하는 사귐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실로 엄청난 하나님의 짝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천 년 동안 우리를 기다려 오셨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한 번도 변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사랑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계십니다. 비록 이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아직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사랑하시며 우리가 이 사랑을 깨닫기를 기다리십니다. (중략) 예뻐서 사랑하거나 잘나서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키면서 그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멀리서 볼 때에는 무감각했으나 이 사랑 앞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충격을 받게 됩니다. p.115

 

 

<하나님의 자녀라고 담대히 선언하라>

어떤 사람은 세례 받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하면서도 내심으로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다고 갈등을 느끼곤 합니다. 현재 내모습을 보니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기가 참 민망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개인적인 느낌은 진리가 아닙니다. 사실이 진리입니다. 나의 느낌이 비록 부정적이더라도, 내 삶이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더라도 속단하지 마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오늘도 세상에 나가 만신창이가 되어 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다!" 라고 선언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떠나갑니다. 세상사람들이 우리더러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비웃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p.120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십니까?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하는 신앙고백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불안한 마음을 잡아두는 게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 미래에 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안다 (요일 3:2) 고 말합니다.

우리의 성격과 모습은 점차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바뀔것입니다.

험악하고 거짓된 얼굴이 성스럽고 깨끗한 얼굴로 변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자녀가 되는 관계입니다. p.122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결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무기가 아니라 성결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교회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더러워졌습니다. 순결이 능력입니다.

거룩이 능력입니다. 왜 우리에게 능력이 없습니까?

순결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이 없기 때문입니다. p.123


우리모두 영적으로 깨끗하기를 바랍니다.우상을 섬기지 말고,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하십시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죄짓지 마십시오.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홀려서 장난으로 점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관계가 있다면 끊으십시오.

순결한 생활을 하십시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일이 있거든 다 끊으세요.

미적지근한 관계가 있는 것 다 끊으세요.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니 더욱 더 우리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깨끗하게 거룩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장기에게 갖다 주냐고 말했습니다.

몸을 깨끗하게 하세요. 거룩하게 하세요. 이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광스러운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비결입니다. p.125

  

<죄를 끊기로 결단하라>

죄는 불법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잘못하면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국법을 어기면 개인이 아닌 국가의 헌법에 의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모든 인류는 나라와 종족과 언어와 문화와 시대를 초월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p.130

  

<죄를 비추는 거울>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착각하며 삽니다.

"나는 죄를 지은적이 없다. 나는 누구보다 양심적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고 자부합니다.그러면 죄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에 그 사람을 비춰보면 죄가 있는지 없는지 가려집니다.

하나님의 율법. 즉 성경말씀을 읽고 있으면 죄가 보이고 깨달아집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비추지 않으면 전혀 죄인 줄 모르고 마음껏 행합니다. 자신이 겪은 억울한 일들 때문에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오직 피해자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알게 되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말씀으로 자신의 죄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죄를 지은 것은 인정하지만 통회하지는 않습니다.

죄를 들킨 사람은 감옥에 가고, 운 좋게 죄를 들키지 않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활개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죄를 들키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다른 사람도 똑같이 죄짓는데, 왜 나만 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떠들어 댑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죄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드러나지 않던 죄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하고, 죄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죄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p.13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2-13)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율법입니다. 말씀에 의해 우리는 벌거벗은 것처럼 전부 드러내게 됩니다. 

숨은 것도 훤히 드러납니다. 죄라고 생각하지 않던 것도 죄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죄의 정체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눈물을 흘립니다.가슴을 내리칩니다.

자신의 실체를 보고, 자존심을 내려놓습니다. 이론과 상식과 지식으로 무장했던 자신을 깨뜨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디ㅏ. 말씀이 들어와야 죄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접근해야 죄가 보입니다. p.132

  

우리가 원하지 않는 죄를 계속 짓는 이유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계속 죄짓는 사람은 교회만 왔다 갔다 할뿐 

그 마음속에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양심이 예민해집니다. 죄를 하나 지으려면 얼마나 진땀 흘리고 ,  

고민하고, 괴로워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그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쉽게 거짓말하고, 쉽게 사기치고, 못된 짓을 쉽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거나, 말씀이 있다 할지라도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무서운 죄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식은 죽 먹기 식으로 간단하게 처리했던 문제도 하나님을 알고 나면 그것이 무겁고 

엄청난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성경을 계속 읽고 있으면, 설교를 계속 듣고 있으면 죄 지을 마음이 없어집니다.죄 짓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말씀이 있어야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야 죄를 짓지 않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씀이 있는 곳에 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있으면 죄를 짓고 싶어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말씀이 없으면 죄를 안 짓고 싶어도 자꾸만 죄를 짓게 됩니다. p.134-135

 

<죄를 짓지 않기로 결단하라>

이제 우리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나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선택과 결단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예비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지를 사용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주님 안에 있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더이상은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죄를 안 짓겠다고 결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죄를 안 짓기로 결정하면 굶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권력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결단해야 합니다. 성경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마6:31-32) 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짓지 않기로 결심만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죄의 유혹에 빠질 것 같습니까? 우리 앞에 마귀가 입을 벌리고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죄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면 포기하십시오. 죄를 짓는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p.139

 

 

예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십시오. 예수님 안에 거하면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쁜 친구를 끊으십시오.

둘 중 하나입니다. 전도하든지, 끊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내 안에 혹시 끊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죄를 끊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영생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p.140

 

 

<하나님 사랑에 물들라>

그리스도인의 지표요. 신분증은 사랑입니다. 부활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의 메시지도 사랑입니다. p.143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했다면, 신약에서는 여기에 이웃 사랑을 더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메세지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서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고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13:8),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보여줄 것은 큰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엄청난 교인 수나 많은 헌금도 아닙니다. 기적과 능력도 아닙니다. 천사의 말이나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나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희생이나 구제도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 줄 것은 작은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내어 주는 사랑이요, 다른 이의 허물을 감싸주는 사랑이요. 형제의 고난속에 동참하며 형제의 발을 씻어주는 겸손과 사랑압니다. p.144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뿐입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아무리 칠흑같은 어둠과 미움과 죽음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이 있으면 이 모두가 햇빛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내가 빛을 발하려고 하면 진땀을 뺍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안에 오시면 사랑을 쉽게 품을 수 있습니다. 사랑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p.148

 

본문은 두가지로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두가지를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사랑을 아는일입니다. 예수를 알때 사랑을 압니다. 사랑을 알때 예수를 알게 됩니다. 예수 없는 사랑은 생명없는 사랑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 모두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예수님의 사랑에 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생명의 사랑이요 영원한 사랑입니다.

둘째,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목숨까지 거는 사랑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생명을 거는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기적이 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죽을 각오로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가정을 위해 기도하면 예수 안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점잖게, 우아하게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면 사랑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를 향해 우리가 품어야 할 사랑은 예수님처럼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사랑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생명을 건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p.150

 

진정으로 말씀을 소유한 사람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되며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거듭나고 성화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 말합니다. p.165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 인간의 사랑과는 그 질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죽음으로써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p.188

 

사랑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우리는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고 사랑을 하기 위해 인간적인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고 싶다고 무조건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만큼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결과입니다.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19)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라는 원인이 있어야 사랑이라는 결과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거울 앞에 설 때, 예수의 십자가 앞에 설 때 사랑이라는 것을 보게 되고, 비로소 사랑에 눈떠서 사랑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빠져들면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성품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p.198

 

사랑의 비결은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얼마나 바라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얼마나 오래 바라보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p.199

 

우주의 심판 날, 이 역사가 끝나는 날에 즉 우리의 생애가 끝나는 날에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뿐입니다.

죽을 때 찬송을 부르며 죽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뿐입니다. 심판 날에 그 어떤 정죄에도 , 그 어떤 심판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뿐입니다. p.211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기서의 형제란 첫째, 골육의 형제를 말합니다. 사도바울도 자기 골육의 형제를 위해서 제 생명을 버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디모데전서 5장에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고 했습니다. 

사랑하되 가족을 먼저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남편을 사랑하십시오. 부모님을 사랑하십시오.

자녀를 사랑하십시오.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면 그것은 거짓 사랑입니다.

다 보여주기 위한 사랑일 뿐입니다. 이는 믿음을 배반한 행위입니다. 성경은"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16:31)

고 말씀합니다. 가족을 구원하십시오.친척들을 구원하십시오. 제일 가까이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구원하십시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형제입니다. 교인 식구들입니다. 교회는 말이 많습니다. 겉으로 사랑하고 속으로 미워하는 데가 교회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로 용납하고 허물을 감춰주고 사랑해야 합니디ㅏ. 서로 비판하기보다 감싸주어야 합니다. 함께 떡을 떼어 나눠먹고 필요한 것들을 나눠쓰는 형제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와 상관없는 이웃들이 형제입니다. 성경은 '갇힌 자를 생각하라 (히13:3) 고 말합니다. 갇힌 자, 억압당하는 자, 고문을 당하는 자, 병들고 굶주린 자, 작은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십시오.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 모두 형제들입니다.

큰 사랑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작은 사랑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사랑은 좋은 감정입니다. 상대방을 향해 웃음을 날려 보십시오. 좋은 말을 건네고 축복을 빌어 주십시오. 사랑은 베푸는 것입니다. 형편에 맞게 나누고 베푸십시오. 희생과 헌신의 사랑을 베풀 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p.216

 

PART 3. 생명을 누리는 사귐

 

 생명은 성장합니다. 생명은 변화합니다. 생명은 재생산하며 신비를 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과거나 현재나 변화없이 제자리걸음만 합니다. 그에게 진정한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신안에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생명이 우리안에 있다면 성격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삶이 변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영접하십시오. 그의 생명을 품고 온몸으로 느끼십시오. 그러면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p.230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것, 그것은 생명입니다. 성경은 바로 생명의 책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흐르는 하나의 강이 곧 생명수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확인한 사람은 기도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뜻을 하나님께 통보하듯이 기도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실수입니다. 나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참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이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우리의 것을 주장하던 기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바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드리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마음에 맞게 간구하며 드리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성경 안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p.2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타락하고 죄 지은 것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습니다.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라면 유혹과 죄를 거부할 것이며, 사탄이 우리를 건들지 못할 것입니다.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 못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죄와 싸워 이길 능력을 주셔서 그 힘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다는 뜻입니다. 유혹한 자의 죄도 크지만 유혹을 받은 자의 죄는 더 큽니다. p.249-250

 

예수 믿는 가장 큰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됐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내가 악한 세상에 속하였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신분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만 알아도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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