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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사는 강 - 우리어린이 자연그림책
김순한 지음, 정태련 그림 / 우리교육 / 2005년 9월
평점 :
아주 어렸을 때, 내가 몹시 궁금해하던 것 중 하나가 강은 어디서 시
작해서 어디로 흐른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일년 내내 흐를 수 있는
가,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강이 상류
쪽도 바다와 연결돼 있어서 그럴 거라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이가 없지만, 그 생각은 너무나 강력하게 머리 속
에 뿌리를 내려서 나이를 꽤 먹은 다음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수많은 작은 흐름들이 모여 강이 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도 쉽사리 이해를 못 하고 믿고 싶어 하
지도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때는 주위에 이런 책도 없었다. 이 책, <수많은 생명
이 깃들어 사는 강>만 읽었어도 내 삶은 좀더 과학적이고 자연적(ㅡㅡ
;;)인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어린시절의 궁금증은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해결이 됐을 테니 말이다.
"간밤에 내린 비가 한데 모여 가느다란 물줄기를 이루어요.
골골 흐르다 땅 속에 숨고 골골 흐르다 땅 위로 나와요.
바위를 돌아 나무뿌리 풀뿌리를 적시며 먼 길 떠나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모든 자연적인 강의 시작은 다 저렇다. 그렇게
시작되어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마을과 도시를 지
나, 거대한 강물이 되어 마침내 바다와 만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강의 그런 변화하는 모습을 따라가며, 각각의 장소에 서식하는 생물들
, 곧 물고기, 젖먹이동물, 새, 곤충, 식물 등을 소개한다.
강 주변 생물들의 서식은 강물의 많고적음과 지형, 인공 환경 등으로
부터 큰 영향을받는다. 그리하여 강물의 각 지점마다 볼 수 있는 생물
이 다른데, 예를 들면 계곡의 맑고 시원한 물에는 버들치, 열목어, 금
강모치, 날도래 애벌레, 하루살이 애벌레, 가재 같은 것들이 살며, 들
판의 시냇물에는 꺽지, 걀겨니, 피라미, 다슬기, 참게, 백로, 해오라
기 들, 넓고 깊은 강에는 얼룩동사리, 쏘라기, 납자루, 메기, 말조개,
각종 철새 들이 산다.
이 책은 아름답고 섬세하며 정확한 글과 그림으로 이 모든 것들을 묘
사하고 있다. 그림책의 시원함과 도감의 친절함, 그리고 동화의 따뜻
함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나 할까. 사실 이 책은 그림책 같으면서도 그
림책이 아니고, 도감 같으면서도 도감이 아니다. 그 두 가지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동화적 상상력까지 추가했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보면 가
령 이런 식이다.
"버들치가 바삐 움직여요.
떼지어 다니길 좋아하는 버들치는
강버들 밑에서 놀기를 좋아하여 버들치라고 해요.
....
돌 밑에는 수컷 둑중개가 꼼짝 않고 알을 지켜요.
암컷이 돌 밑에 알을 조롱조롱 붙여 낳았거든요."
마치 동요와도 같은 이 글에 미려하고 생생한 세밀화가 덧붙여지면 어
떤 느낌인지는 직접 책을 펼쳐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들도 이 책을아주 좋아한다. 일곱살 짜리 내 조
카는 이 책을 펼쳐들고 쉴새없이 질문을 하며 귀찮게 한다. 동생과 함
께 보며 물고기 이름을 가지고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그저 금붕어,
열대어밖에 모르던 아이가 열목어니 퉁가리를 입에 올리고, 생각없이
지나치던 동네 하천이며 아파트 단지 화단을 심상치 않게 보는 걸 보
면 신기하기조차 하다.
가장 반가운 건 아이들이 자연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듯하다는
거다. 책 속에 그려진 것들이 바로 자신이 속해 있기도 한 자연이라는
것을 아직 깨달을 수는 없겠지만, 자연의 정서를 체험함과 더불어 그
실체를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은 정말이지 소중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화가의 화풍이 원래 그런 것으로
보이지만, 그림의 색감이나 질감이 좀더 강했으면 아이들이 더 좋아했
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유아들이 보기에는 활자가 작다는 점 등이다.
또한 값이 좀 비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강>이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울러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