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 / 학지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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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끼는 힘, 부모가 물려줄 최고의 유산입니다"
존 브래드쇼 [가족: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심리여행]을 읽고(학지사, 2006;1988)


  “권위에 복종한 죄 밖에 없다!” 뉘렌베르크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나치 전범들의 말이다. 그들은 용서받아야 마땅한가? 과연 유태인 학살을 명령한 히틀러만의 문제인가? 그들은 옳고 그름을 생각할 지성이라곤 과연 없었던가?
  나치주의에 의한 재앙! 이 역사에 대해 심리학자 에릭슨은 '가부장적 군주주의 하에서 억압되어 있던 정서생활(감정, 의지, 욕구) 의 폭발'이라고 말한다. 즉, 양육과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모욕, 조종, 학대, 무시를 일삼는 권위주의적인 가정생활에서는 복종 훈련만 남게 되는데, 그 결과 내용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지도 않은 채 명령만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 가정생활에 남아있는 강한 억압은 결국 유태인에게 투사되어 전 국가적인 표출행동을 만들어 낸 것이다.

  깨어진 가족이란 ‘버려짐’이 일상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방임과 폭력이라는 표면적인 형태의 버려짐은 물론이거니와, 자녀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의존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도 소극적인 형태의 버려짐이다. 또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지 못하며, 자녀들의 감정을 지지해 주지 못하고, 파렴치한 행동의 형태로 자녀에게 수치심을 심어주는 것도 모두 버려짐이다.
  이것은 성숙한 민주주의 모습이 아닌, 가부장적 군주주의의 잔재다. 많은 부모들이 이것이 해롭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며, 나쁜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해로울 수 있다. 지금 이 시간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순종, 정리정돈, 청결, 감정과 욕구 절제, 창피를 주고 야단치는 방식으로 그들의 자존감을 파괴시키고 수치심을 갖게 한다.
  수치심은 죄책감과 다르다.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죄책감과 달리, 내가 잘못된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수치심은 ‘존재의 상처’다. 모욕, 조롱, 조종, 위협, 거절, 무시, 폭력 등의 버림받음이다. 이  분노감, 수치심을 표현하도록 허락받지 못하면, 아이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큼 ‘나는 나쁘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고 만다.
  수치심이 내면화되면 자기 비하나 무감각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자기 존중이 없는 성인아이가 되고, 이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 진다. ‘중독’‘ 강박’은 비자기화의 형태인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문제, 지나친 책임감, 친밀감 문제, 극도로 강박적인 생활 스타일, 심한 자기 비판, 얼어붙은 감정, 끊임없는 착한 아이 행동, 강력한 통제의 필요 등은 중독, 강박의 후유증이다.
  가족은 참된 미덕의 기초를 닦으며, 변치 않는 진정한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깨어진 가족에서 자란 아이는 문제가 많은 ‘성인 아이’로 자라게 된다. ‘성인 아이’가 아이를 기르고 그 아이가 다시 ‘성인 아이’가 되어 버린 위기의 결과는 결국 나치주의에 의한 재앙과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십대들의 무질서, 폭력의 일상화, 약물 남용과 같은 사회문제는 그 원인이 모두 깨어진 가족에 있다’는 명제를 일반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저자 존 브대드쇼. 그는 매일 기도하고 묵상하는 신학생이자, 모두가 잠든 늦은 밤에 알약과 위스키를 꺼내드는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했다.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한 그는 역기능 가족의 피해자였다. 따라서 이 책은 역기능 가족의 피해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한 그가 심각성의 크기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도 말해 준다. 역기능 가족의 폐해가 큰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족이 제대로 기능하면 사회의 상처는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느낄 수 있는 힘이 있다. 저자는 감정(emotiom), 느낄 수 있는 힘을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e-motion)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분별할 수 있는 에너지, 슬픔은 작별을 고하고 상실을 슬퍼하는 에너지, 죄책감은 우리의 양심을 형성하는 에너지, 수치심은 우리가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임을 알려주는 에너지, 기쁨은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에너지다. 이 느낄 수 있는 힘은 결단할 수 있는 힘, 상상할 수 있는 힘, 알고자 하는 힘을 낳는다.
  이는 16세가 될 때까지 '서서히 그리고 건강하게 도전 주기'와 '인지적인 한계 인식하게 하기' 사이에 균형을 맞추어 주는 좋은 가족에서 자라는 힘이다. 돌보아 주는 사람으로부터 '존귀하고 독특한 존재'라는 자아상의 기반을 통해, 자기 인식, 자기 분화, 공감, 지속성, 자기 동기화, 사회기술이 좋은 건강한 성인이 되는 것이다.
  건강한 엄마는, 직장에서 좌절과 분노를 느끼고 퇴근한 날 "네 방이 왜 이 모양이니, 숙제는 다 한 거니, 넌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니?"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좌절감과 분노, 상처의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감정과 행동을 분화해서 "혼자 있고 싶구나, 난 화가 나고 실망스럽고 상처받았거든"이라고 말한다. 수치심을 감정으로 되돌리며, 수치심의 무한 감정을 적절한 크기로 줄이고, 우리에게 전가한 '수치를 모르는' 초기 인물에게 그 수치심을 돌려주고, 그 에너지를 적극적인 행동으로 변환시키는 수치심을 외면화하는 과정을 잘 해 낸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견해 차이를 인정하는 것, 즉 평등에 기초한 성숙한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는 모습이다. “넌 멍청이야,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라고 다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어조 대신 "나는 기분이 나쁘다"로 표현하는 좋은 사회 기술로 연결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이 모습인 것이다.
  성숙함을 갖춘 어른은 ‘건강한 수치심에 의해 잘 균형 잡힌 자율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대단하다는 망상’과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버려야 가능하다. 성숙함(온전함)을 향한 여정은 ‘환상에서 깨어나기’와 ‘애통해 하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주기를 따를 때 성숙함에 필요한 애도 과정이 40년은 걸린다고 한다. 일회성의 내적치유로, 한번의 깊은 깨달음으로는 불가능하다.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되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다, 내 고통은 절대 극복될 수 없다’는 부인과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해결될 수 있다’는 망상은 진짜 문제를 분산시켜 직면을 회피하게 해 버린다. 고통스러운 직면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유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큰 망상은 불완전한 반쪽이 불완전한 반쪽을 만나면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인데, 불완전한 반쪽과 불완전한 반쪽이 만나면 결혼하기 전의 불완전했던 것보다 더 불완전해진다. 참으로 무서운 악순환이다. 나의 경우, 아버지의 결혼 반대 덕분에 자기 인식과 자기 분화의 내적치유 과정, 가족들을 용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그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어 더욱 감사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강박과 중독의 문제, 그 근원이 되는 가족 문제를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다루었다. 미국에서 출판된 시기는 1988년 그런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2006년이다. 우리 사회가 여타 문제의 근원이 가족에 있다는 인식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감정 인식과 공감의 힘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 깨들음은 최근의 일이긴 하다. 한편, 이 책은 자기 사랑에 머무는 일반 심리학책과는 구별된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의 온전함은 회복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힌다.
  하나님 안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매일매일 온전한 회복을 위해 소망하고 노력하며, 가정을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받는 진정한 안식처'로 잘 가꾸고, 그 가정에서 자란 건강한 개인들로 따뜻한 사회가 이뤄지는, 아름다운 선순환을 꿈꾸고 소망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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