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 갇힌 세대를 위한 구원의 노래
유진 피터슨 지음, 김명희 옮김 / IVP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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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선물이지만,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기술입니다”
- 유진 피터슨의 [자유] (1988, 2007, IVP)를 읽고 -

 
  10주 진단은 족히 나올 만한 감정적 구타를 아들에게 한 교사를 ‘용서’라는 이름으로 ‘묵인’하고 넘어가려는 한 집사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뚜렷한 잘못도 없이 뺨을 맞고, 발로 걷어차이고, 수십 대를 주먹으로 맞은 아들이 괜찮다 한다며 그냥 덮어두려한다. 아들이 갖게 될 외상 후 스트레스의 심각성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설명해도 요동하지 않는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는 그 분의 말에 내 안에서 답답함이 밀려온다.
  ‘용서해라. 고난을 극복해라.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 이와 같은 설교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저주하고 저항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 여기고, 스스로의 감정에도 자유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도 느끼지 못하게 억눌려 있는 기독교인들. 이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 자유’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저주할 자유, 저항할 자유, 생각할 자유, 실패할 자유, 사랑할 자유...’의 목차를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갇힌 세대를 위한 구원의 노래”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유진 피터슨의 [자유]는 나에게 희망의 소리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하면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자유로운가? 먼저 자유의 의미부터 짚어 봐야할 일이다.
  이 시대는 선거, 종교, 직업, 결혼과 같은 일반적인 자유는 대체로 보장된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 넘쳐난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적당히 부유하고, 병들지 않는 것’을 자유라 부르고, 누군가는 ‘무언가 하고 싶을 때 생각하지 않고, 계획세우지 않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도 않고 시도하는 것’을 자유라 부른다. 사실상 현대인이 갈망하는 것은 ‘자유’라는 이름을 쓴 ‘안전’이거나, ‘환상’이다.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거나 경멸하는 자유는 ‘거짓 자유’다.
  기독교인들도 가난에 얽매이는 사람들, 사랑이 식은 가정에 얽매인 사람들,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얽매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제목으로 삼는 걸 보면, 세상 사람들이 갈망하는 ‘안전’과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과연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삶이라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 적당한 부요와 병을 얻지 않는 것,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일까? 자유롭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척하고,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무서운 것 아닐까?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는 선물이다. 자유는 구속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자유로운 건 안전한 삶은 아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람이 아기에서 아이를 거쳐 청소년,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한 것처럼 자유는 수년 동안의 학습과 협상 시련과 실수, 사고와 치유, 모험과 실패를 동반하다. 요셉의 삶처럼. 그렇다고 해서 구덩이나 감옥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건지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다가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믿음의 삶 속에서 자유로워질 운명과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는 모두 자유의 이야기다. 한 사람이 어떻게 작은 개념들의 한계에서 해방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매인 사슬에서 해방되었는지, 죄책과 후회라는 감정적 감옥에서 해방되었는지, 자아의 감옥에서 해방되었는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해방되었는지를 다룬다. 우리는 변화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진정한 자유로운 삶을 경험(유지)하는 건 아니다. 출애굽을 하고서도 '공허함'의 과정을 견디지 못해 결국 금송아지에 묶여 자유를 반납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예수와 풍성한 자유를 경험하고서도 부주의한 회귀를 한 유다처럼 자유를 모독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자유로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게 하는 부활 신앙의 의미가 흔들려선 안 될 일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뭔가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음을 믿을 때,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안에서 구원을 이루어 내셨음을 신뢰할 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진리가 보이는 세상을 하나로 묶는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가 하는 일과는 별개로 우리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믿음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자유에는 조용함과 자연스러움이 있다. 추락이 있는 세상의 성공과 같지 않다.   
  믿음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자유는 실재와 맞닿아 있다. 정상적인 복음은 신문을 읽을 때마다, 텔레비젼을 볼 때마다, 재정지출 계획을 세울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의 요구와 필요에 응답할 때마다 사랑과 용서, 은혜의 위대한 진리들은 매일의 일들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세상의 거리와 들판, 가정과 시장은 문화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적용한다. 인간의 자유의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 희락, 화평’의 행위와 ‘인내, 자비, 양선’의 인격적 성장과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표출되는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께서 제공하시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서 말이다.
 
  유진 피터슨은 ‘믿음의 삶에서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 인간됨의 핵심이며,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를 삶에서 드러내는 일은 21세 그리스도인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를 ‘자유’라는 주제로 풀어간다.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권영경이 ‘위선적 영성에서 해방되기’로 갈라디아서를 풀어간 것과 다르지 않아 함께 읽으니 더 유익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나누어 주어야 한다. 죽을 수 밖에 없다’라는 일반적인 문구를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자유가 있고, 용서하고 나눌 자유가 있고, 죽을 자유가 있다’는 걸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참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욕구를 잃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자유로운 삶에 대한 허기와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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