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배우는 멸종과 진화 한빛비즈 교양툰 31
김도윤(갈로아)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화로 보는 멸종과 진화>가 현존하는, 멸종한, 혹은 멸종해가는 생명체를 다루는 방식은 다소 독특하다.
대다수 비슷한 콘텐츠가 장엄한 장면을 통해 생명의 숭고함을 재현하는 방향이라면,
이 작품은 밈과 패러디를 생명에다 덧씌워 애정을 표현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이전에 지구상을 주름잡았던 생명체에게 으레 사람들이 기대하던 야성, 앞서 말한 숭고함과 장엄함 따위는 이 만화 속에서 범람하는 모에화와 패러디의 물결 속에 아무렇지 않게 휩쓸려 지나가는 듯 보인다. 마치 그 강인했던 생명체들마저 시간의 흐름에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간 것처럼.

단순히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방식을 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화로 배우는 멸종과 진화> 를 읽으며 웃음과 감탄 이전에 가슴이 절절해지는 건 아마 생명과 인터넷 밈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죽는다. 이것이 생명과 밈이 공유하는 공통점이다.

모든 생명체는 죽고, 모든 종은 언젠가 멸종한다. 모든 밈에도 수명이 있다. 앞으로 2년 정도만 지나도 이 만화에 나오는 상당수의 패러디는 나무위키를 참고하거나 저자 각주를 달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개그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모에와 패러디와 밈을 거의 욱여넣다시피 활용한다. 나는 퍼리 모에화된 딩고와 얼룩말에 놀랐으며, 너의 이름은으로 설명하는 화석 생성 과정과 나방녀 패러디를 보며 감탄했다.

바다방울벌레가 타카기양으로 패러디된 장면에서 타카기양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꼬리털이 표현된 것을 발견했을 땐 전율할 정도였다.

이건 분명 애정의 영역이다.
모에와 밈과 패러디를 통해 포장되는 것은 오직 작가의 애정이다. 멸종해버린, 혹은 멸종을 향해가는 모든 생물을 억지로 추켜세우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이 생명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비춘다. 분위기는 가볍지만 메시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생명의 숭고함을 더욱 강렬하게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다.

작가는 모든 죽은 것과 죽어가는 것을 살아있다며 억지로 포장하지 않는다. 모에와 패러디로 덧씌워진 모든 것들은 언젠가 맞게 될 밈으로서의 죽음을 결코 회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생명도 종도 언젠가는 죽는다. 에필로그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에서 작가는 이 사실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그 흐름은 누가 얼마나 노력하든 절대 막을 수 없다.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대자연은 그 빈자리를 다른 종으로 메꿀 것이다. 그것이 이 행성이 수십 억 년동안 해온 일이니까.

하지만 작가는 자칫 염세적으로 읽을 수도 있는 이 사실에서 한걸음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는 생명을 사랑해야 하는가’ 의 이유를 설파한다. 그야말로 인간찬가적인 테마가 아닐 수 없다.

<만화로 보는 멸종과 진화>가 좋은 학습만화인 이유가 여기 있다.
쉬운 설명으로 독자의 지식을 습득을 탁월하게 도와주기만 할뿐 아니라, 이 지식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의식 면에서도 어디 하나 빼놓을 점이 없기 때문이다.
.
.
.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며 언제나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면, 사람은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고민하는 지점이지만, 절망으로 가득한 시대에 남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웹툰의 단행본은 서포터즈 일환으로 받은 것에 더해 초판으로 하나 더 구매했다. 웹툰으로 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는 자부심과 희망에, 그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