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 필연성의 질서 - 친절한 비판적 실재론 입문
로이 바스카 지음, 게리 호크 엮음, 김훈태 옮김 / 두번째테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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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바스카는 정상과학의 학자들이 질문을 멈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상식의 오류를 건드려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의 편에 서서 근대학문의 기층에 숨어 있는 인간중심주의를 폭로한다. 대표적인 것이 존재론의 문제를 인식론의 문제로 환원한 경험적 실재론인데, 사실상 그것은 근대사회에서 권력을 누려왔던 기득권자들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인간 해방은 기득권중심의 시선, 나아가 인간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게 바스카의 주장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닌 허위, 차별과 착취를 낳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와 개인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사회 혁명은 개인 내적인 혁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바스카의 후기사상인 메타실재의 철학은 인간 내면의 정신적 측면까지 파고든다.

사회 변혁에 대해 함께 고민했던 동료 학자들도 이러한 ‘영성적 이행’에 관해서는 곤혹스러웠으리라. 뿐만 아니라 후기로 갈수록 바스카의 문장은 난해해지고 개념은 비약이 심하다. 그의 후기사상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작고 직전 자신의 사상 전반을 입문자들에게 쉽게 풀이해 주는 연속 강연을 진행했다. 그것을 담아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입문자를 위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만만한 내용은 아니다. 최대한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음에도 다루는 주제만큼은 하나하나 묵중하기 이를 데 없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피하지 않는다. 물론 바스카의 통찰은 여전히 신선하고 예리하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정처 없는 오늘의 학문세계와 현실세계에 그는 묵직한 닻을 던져 주는 듯하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기만의 확고부동한 학문적 원칙을 세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 아니 다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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