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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열쇠고리 ㅣ 신나는 책읽기 19
오주영 지음, 서현 그림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수상작이란 선입견 탓인지 이 동화집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참 잘 썼다는 것이었다. 첫 작품에서 느껴질 법한 어딘가 서툴러 보이는 부분도 거의 없었고, 억지 같은 상황이나 설정도 없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이나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아하~ 하는 감탄이 나올 만큼 그럴 듯하게 느껴졌다. 나도 어릴 때 이랬는데, 애들이라면 정말 이럴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아이들 마음을 잘 알고 잘 표현한 동화들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동전 하나로 온갖 상상을 순식간에 펼쳐 나가며 흐뭇한 기분에 빠져 있는 단지 모습은 비단 어린이뿐 아니라 상상력을 가진 누구라도 한번쯤 겪어봤을 듯한 장면이다.
아이들이 겪는 일상과 그 일상을 겪으며 생길 수 있는 마음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한 것 같다. 특이한 일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을 가지고 판타지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읽는 동안 꽤 재미있게 다가왔다.
주인공만 있는 글
그런데 동화를 읽은 뒤 시간이 좀 지나자 문득 동화 속 아이들이 겪는 상황과 갈등은 가만 보면 친구들이나 다른 인물들과 겪는다기보다는 혼자 속으로만 겪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친구도 등장하고 다른 인물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인물들이 주인공이 겪는 일에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거나 갈등을 고조시키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보다는 그냥 주변 인물로만 나오는 것 같다.
오로지 주인공 혼자서 상상하고 속으로 힘들어하고 갈등을 겪다가 결국 또 혼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며 이야기가 끝난다. 이야기 네 편이 모두 비슷한 유형을 보이며 진행되다가 결말도 비슷하게 끝나고 있다. 혼자 으쓱해하고, 혼자 다시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친구에게 가긴 하지만 막상 이야기에는 직접적으로 친구가 등장하지 않고, 또 혼자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하는 갈등을 다스리는 걸로 끝난다.
재밌지만 싱거운 독백
작가가 일부러 아이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런 갈등을 구상하고 그런 것들을 어떻게 풀어내고 정리하고 다시 갈등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 읽었을 때 다가온 재미와는 달리 어떤 카타르시스는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흥미진진한 혹은 잔잔하지만 뭔가 생각해볼 만한 그런 이야기를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좀 싱거운 느낌이다.
다른 인물들과 부딪치며 자신이 가진 갈등을 표출하고 욕구를 실현하는 그런 게 아닌, 그저 혼자서 혹은 자기 집 안에서 그런 갈등과 욕구를 겪고 표출하고 혼자 해결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요즘 아이들은 다 이렇게 혼자서 노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짧은 동화에서 여러 복잡한 상황을 기대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또한 실제 공간이나 시간 제약과 상관없이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판타지로 이야기를 펼친 자체는 기발하고 흥미롭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공간이나 인물이 제한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판타지로 표현되는 상황들이 현실 속에 있는 아이들의 걱정이나 갈등 해결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글을 읽었을 때 단순한 공감에서 좀더 나아갈 수 있는 뭔가가 아쉽고, 정말 괜찮은 동화를 읽었을 때 남는 속 시원한 기분이나 긴 여운 같은 걸 느끼기엔 부족한 동화들 같다. 누군가 하는 독백을 실컷 재미있게 듣고 나서 뭐 별 얘기도 아니네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