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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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지만 너울거리는 파도같은 소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에서는 빠른 사건 전개도, 놀랄만한 반전도 찾아볼 수 없다. 소재 자체는 흥미롭고 색다르게 다가올지 몰라도,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은 조금은 덤덤하고 담백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인물들의 감정, 부드럽게 흘러가는 사건의 전개가 몰입감을 더 높여주었다. 또 각각의 이야기에서 주요한 사건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었고, 이것은 정확히 언제 올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소설을 파도같다고 말한 이유다. 당장은 잠잠해보이는 바다지만, 작은 파도가 조금씩 오고있고, 언제 큰 파도가 올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걱정되고 불안하면서도, 기대되는 그 오묘한 느낌이 이 소설의 주된 정서라고 생각한다.

또, 그런 분위기는 소설 속 대화 한마디 한마디에서도 잘 드러났다.
모든 소설은 주인공이 서술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그들의 심정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렇기에, 인물끼리의 대화로는 전부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속마음 만큼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어쩔수없이 절제되어야 하는 그들의 말이 더욱 인상적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표현이나 전개방식 만큼이나 결말과 관련된 부분도 색다르게 느껴졌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분명한 끝, 행복한 결말 보다는 현실적인 마무리에 가깝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찝찝한 부분도 남아있다. 엉킨 부분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 투성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현실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들에게 더 공감되고, 그들의 마음이 더 와닿는 것 같다.

그들의 깊은숨을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
동시에 내가 내뱉는 깊은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이 책 덕분에 가졌던 것이 아닐까.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 하나의 숨결,
<깊은숨>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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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 생화학무기부터 마약, PTSD까지, 전쟁이 만든 약과 약이 만든 전쟁들
백승만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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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단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에 처한 수많은 목숨들을 살린다.
서로 대척점에 있는듯한 ‘약’과 ‘전쟁’,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쟁과 약의 역사는 항상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번 발발한 전쟁은 수많은 질병을 낳고, 그 질병들은 약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우연히 탄생한 새로운 약은 다른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약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전쟁과 약과 질병의 이 기나긴 악연, 이 책은 그 역사의 굴레에 대해 주목한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과 질병, 약의 관계를 함께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로따로 봤다면 이해하기 힘들 개념도, 서로 간의 관계와 함께 앞뒤 전후 사정, 하나의 스토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도 관련된 이야기를 접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약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모르핀이나 메스암페타민 같은 마약, 유럽을 공포에 떨게했던 스페인 독감 같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헷갈리는 개념도 흥미롭게 배워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서술방식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서로 간의 관계를 함께 살펴보더라도, 질병과 전쟁, 약은 어려운 개념이다.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려 해도,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살펴봐야 할 내용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전쟁의 역사에서도, 약의 기본적인 원리에서도 꼭 알아야 할 내용들 만을 간결하게 정리해서 제시한다.

게다가 이는 저자 만의 재치있는 설명 방식을 통해 더욱 빛났다.

“페니실린 실험과정은 곰팡이에게 입주 청소까지 완벽하게 해놓은 신축 아파트를 주고 음식물을 가득 채워준 셈이다.”

“새로운 약물 제조 과정은 오디션을 통해 그럭저럭 괜찮은 연습생을 뽑고 긴 훈련을 통해 데뷔시키는 과정이다.”

이렇게 읽다가 한번쯤 웃음이 날만한 문장들은 자칫하면 어두울 수 있는 책의 주제를 조금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약과 질병, 전쟁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전쟁이 만든 약과 약이 만든 전쟁들,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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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 2022년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김준녕 지음 / 허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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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공간, 정해진 계급, 숨겨진 진실 등 소재부터 엄청난 기대감을 자아내는 이 소설, 중요한 것은 소재는 단지 이 소설의 무수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는 점이다.

우선,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내용부터 살펴보면, 구체적인 설정과 짜임새 있는 구성이 가장 큰 특징으로 드러난다. SF 장르의 특성상, 조그마한 설정의 오류나 초반의 복선을 회수하지 못하면 몰입감이 확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다. 그렇기에 초반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 책은 기승전결 모두 완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흥미롭고 충격적인 시작, 몰입감있게 진행되는 전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건, 이 모든 것을 마무리 지어주면서도 일말에 찜찜한 부분조차 남기지 않는 결말까지, 내용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것 같다.

거기에, SF 장르의 특성 상 다소 상세한 설정으로, 중간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거나 내용 자체에 약간의 진입장벽이 생길 수 있기 마련이다. 이런 단점을 고려한듯, 이 책은 단번에 이해되는 내용과 깔끔한 서술방식,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는 등 좀 더 쉽게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다음으로,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책이 주는 메시지에 주목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권력은 주체가 조금씩 바뀔뿐 계속해서 남아있고, 누군가는 항상 소중한 것을 뺏긴다.

어느 한 사회의 모습으로 규정짓기 보다는,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생길 수 있는 대표적인 생존과 권력에 관한 문제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선 그곳에는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렇게 처절한 투쟁을 해가면서 지속하는 삶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런 문제는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구체화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본인만이 걸어갈 수 있다. 단지 중요한 것은, 그 한걸음 한걸음에서 마주하는 작고 소중한 무언가, 서로의 눈높이를 조금은 맞춰줄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

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몸부림칠수록 밝혀지는 거대하고 잔혹한 현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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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 교유서가 어제의책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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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이탈리아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인류 문학사의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신곡, 그 명성은 널리 알려 있지만, 유독 내용에 대한 부분은 그동안 거의 접하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신곡의 내용은 단번에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히 내용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예술, 정치,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 인간이 다루는 대부분의 학문이 내용과 관련 있을 정도로 다루는 주제가 넓고 포괄적이다. 또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종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소설 속 묘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신곡의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별다른 도움없이는 한 구절도 이해하기 힘들기에, 신곡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책은 ‘신곡 가이드북’으로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책은 신곡에 대한 저자의 강의, 질문자와 답변자가 있는 질의응답이 섞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강의라는 이름처럼, 읽는 사람의 이해에 초점을 맞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용이 진행되면서 계속해서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책이 도와주고 있다. 게다가 앞에서 다룬 내용 중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다시 강조해주는 점, 구절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서 생각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점 등 책으로 만나는 강의 만의 장점 또한 잘 드러난다.

동시에 각 장의 끝에는 질의응답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내용을 접하면서 생길 수 있는 의문을 해결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고, 원래의 생각을 수정하거나, 반대로 강화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의문을 만들고 그에 대한 해답까지 찾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도 단테의 신곡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며 인터넷을 많이 참고하기도 했고, 다른 해설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이 없었다면 그런 노력들은 시도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 구절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감정은 이 책이 있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이다. 책의 내용을 덮고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신곡의 가이드북’으로서 이 책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독하고 집요했던 신곡 50년 공부의 결실, <단테 신곡 강의>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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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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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가난한 사람들은 스웨덴에서 잘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임금소득자와 저임금소득자 사이의 차이는 너무 크다. 스웨덴에서 사회보호대상자가 되려면 양심 없이 태어나야 한다.”

스웨덴이라고 하면, ‘복지국가’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바탕으로 소외되는 사람이 적은 나라, 햇빛을 못받던 사람들의 그늘을 치워줄 수 있는 나라. 불평등이 전세계적인 문제로 꼽히는 지금, 어쩌면 가장 필요한 국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는 결국 외부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배경이 1960년대이고, 지금의 스웨덴은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라 짐작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당시의 시대를 마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다섯아이를 키우는 청소노동자’
오늘을 일해 내일을 버텼던, 고단한 삶에 대해 저술하고 있는 저자는 실제 저소득층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간은 나에게서 빠르게 달아난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슴속에 항상 큰 응어리가 맺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옆으로 고개를 조금만 돌리더라도 가야할 길은 더 멀어지고, 단 하루도 쉴 시간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내일을 어떻게 보내야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홀로 가정을 부양해야 했던, 동시에 매일을 힘들게 일해야했던 저자의 사실적인 기록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은 사회적 폐단을 고발하거나, 당시의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 저자는 자신의 일에 대해 한탄을 하거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녀가 바라본 당시의 시대를 사실적으로 담아낼 뿐이다. 일상을 포함해 세계 정세, 문학,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그녀만의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 보다는 그녀의 생각이 주가 되고, 사건의 결과보다는 그녀가 받아들이는 사건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적어내린 저자의 기록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 펜을 들었으나 백지 앞에서 가장 행복하고 진솔했던 스웨덴 여성 청소노동자의 이야기,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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