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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나바르의 연인 (총4권/완결)
유우지 / 더클북컴퍼니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쫓음으로 시작된 관계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바이크라는 평범하지 않은 매개를 통해 아주 깊게 자리한 상대의 본능을 이해하고 속도라는 위태로움 속에서 가장 내밀하고 원초적인 감각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나바르의 연인은.
소중한 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인 준오를 포함해 늘상 어울리는 무리들과 함께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지만 말 그대로 자신의 연인인 나바르를 타는 감각을 즐길 뿐 이외의 다른 무엇에도 어울리지 않았던 지형은 성인을 앞둔 시점 모종의 사건 이후 자신의 연인인 나바르를 준오에게 건내줘요 자신에게 있어 나바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고 그런 진심을 통째로 건낼 수 있는 유일한 상대에게로요 동시에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가 왔고 그에 대한 마무리가 필요함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나바르를 준오에게 건낸 그 순간 혹은 더 이전 지형이 이자보 위에 올라탄 최창견을 그의 발톱이 움켜쥘 수 없는 속도로 앞질렀던 그날 이후 끝난 것은 아무것은 없었다는 것, 끝은 지형에게나 해당되었을 뿐 창견에게는 오직 시작만이 남아 있었다는 걸 당사자 말고는 누구도 몰랐다는게 어쩌면 가장 큰 방심이자 유효 카운터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적인 이유로 나바르를 준오에게 건냈지만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준오에게조차 나바르의 연인이라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지형은 몇 가지 사소한 실수로 인해 운명의 장난처럼 창견과 엮이기 시작해요 광견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철저히 본능을 따르는 남자에게 어설픈 말장난으로 도망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요 휘둘리고 있는 스스로를 너무나도 잘 알지만 정체를 들키지 않는게 우선이었던 지형이 창견에게 익숙해지고 저도 모르게 풀어졌을 무렵 의외의 곳에서 동물적인 감을 발휘한 창견은 아주 괘씸하게 오랜 시간 자신을 따돌려왔고 지금은 바로 옆에서 정체를 잘도 숨겨온 나바르의 연인을 낚아채요 긴 시간 이어왔던 일방적인 추격전을 끝내고 쫓고 쫓기며 앞서가는 이의 뒷덜미를 잡아챌지 아니면 영원히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과거처럼 뒷모습만 바라봐야만 할지 아무도 끝을 알 수 없는 사냥의 시작을 위해서요
나바르의 연인에 대한 창견의 일방적이고 맹목적이며 집요한 집착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고 한결같아요 작중 창견의 입을 통해 낮과 밤 엇갈리는 연인 이자보와 나바르의 이야기가 창견과 지형의 관계를 빗대며 언급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연인들의 애절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목 끝에서부터 숨통을 콱 조여오며 언제 물어뜯을지 모를 대상을 경계 해야만 하는 더없이 살벌한 관계에 가깝죠 머리 끝까지 치솟은 흥분이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감각과 맞닿았을 때 이를 이끌어낸 대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지 역시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표현돼요 아주 동물적인 방법으로요 그리고 그렇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한번 과거의 방법으로 결착을 내려는 지형에 의해 막을 내리는 듯하지만 그런식으로 끝낼 생각이 없던 창견의 돌발 행동과 갑작스럽게 떠나는 준오로 인해 전환점을 맞이하게 돼요 몸으로 움직이는게 통용되던 작은 사회는 과거로 미뤄두고 진짜 그들의 세상에 들어선 두 사람의 추격은 여전히 본능에 의지하지만 최후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이성의 싸움으로 이어져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오직 한 사람 지형에게만 그토록 집요한 집착을 보이고 이유 모를 갈증을 느끼는 창견과 진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왔고 그에 무서울 정도로 부합하는 창견을 옆에 둔 지형이 서로를 보통의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자신 이외의 누구도 설령 그게 바이크라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이와 몸을 자연스럽게 내주는 상대를 단 하나로 여기는 이 아무리봐도 무언가 정해져 있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관계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에선 그걸 단 한번도 표현하지 않고 무엇하나 제대로 결론짓지 않는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어요 나사가 뭉텅이로 빠진 듯 미쳐있는 집착도 결국 사랑이었다고 늘 표현해왔는데 적어도 이 둘의 관계에서 만큼은 사랑 애정 이런 진득한 감정들로 관계를 정의 내리는게 무척 이질적이지 않은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작가님의 초기작이라는 정보만 하나만 알고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소재와 상대의 강렬한 감정에 그 이상으로 불이 붙는 특유의 감성,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날것에 가까운 표현들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처음부터 정신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어요 사실 둘의 관계가 이후 어떻게 되었을지 결론이라고 할만한게 있을지 정말 끝이란게 났을 떄 두 사람의 미래에 상대가 존재할지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만 그래도 그건 만에 하나 언젠가 나올 수도 있을지 모를 외전이나 굳이 하나로 결말을 내지 않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남겨두려고 해요 이 여운이 가실 때 즈음 다시 또 읽을 수 있도록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