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되고 싶었던 소년,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저자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고, 상을 받는 것도 마다하며 유명세를 타고도 좀처럼 사회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특이한 은둔자다. 저자가 작품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듯이 주인공 또한 평소에는 자신을 철저히 숨기다가도 그의 내면에서는 자신을 오롯이 드러낸다.

이 소설은 18세기 프랑스 왕국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곳에서 태어난 살인자 장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후각이 남들보다 몇 배 뛰어나다. 하지만 사람에게 본디 있어야 할 존재의 냄새가 없다. 그래서 되고자 하는 인간의 냄새를 향수로 만들어 그 어떤 누구도 될 수가 있다. 작중에서 그는 사람들을 혐오해마지않는데, 그런 그가 특정 소녀들에게서 나는 향기를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신의 목적은 숨기고 사람들을 기만해가며 신중히 계획을 진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25번의 살인을 끝으로 궁극의 향수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내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처형대에 오르게 된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공개처형을 지켜보러 온 군중들이 궁극의 향기를 두른 채 등장하는 그르누이에게 무아지경으로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부분이다. 그는 사람들이 가면을 쓴 자신에게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더욱더 증오하게 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렇게 혐오해마지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고 자신 그대로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르누이는 자신에게로 질주해 오는 천사를 맞이하기 위해 팔을 활짝 벌렸다. 칼날이 향기의 갑옷과 악취의 안개를 뚫고 그의 차가운 심장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드디어, 드디어 그의 심장 속에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들어온 것이다. 벌써 그는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자신을 알아차리고 복수하러 온 리시를 ‘천사’로 표현하는 대목이다. 그는 존재가 결핍되어있다. 그에게는 사람의 냄새가 없었고 늘 공허했다. 그 공허함을 채워준 것이 냄새였다. 냄새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세상의 모든 냄새를 다 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했던 냄새를 발견하게 된다. 그 냄새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렇게 혐오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그는 이후 자신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향수’라는 수단을 취한다.

그가 행한 살인은 4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생존 본능에 의한 살인.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한 그는 자신을 알리는 행위로 인해 그의 어머니가 죽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두 번째, 사람의 이용 가치에 따른 살인. 그는 자신이 오롯이 소유할 수 있는 향기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 가치가 사라진 사람들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모두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된다. 세 번째, 욕망을 이루기 위한 살인. 궁극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로써 스물다섯 명의 소녀들을 죽인다. 네 번째, 그의 자살. 자신만의 향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향기는 자신만은 느낄 수 없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향기였다. 그는 결국 의미를 잃고 자신을 잃는다.

때론 천진난만한 아이, 때론 오만한 악마, 때론 순수한 예술가였던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그의 행적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기이하고도 안타까운 여운을 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