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를 다시 읽는다 2 - 한국 근대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
윤해동, 천정환, 허수, 황병주, 이용기, 윤대석 엮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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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지평 - 담론분석


대한민국의 근대 일제시대에는 수많은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의 독립, 여성, 청년, 지식인의 역할, 나아가 식민지배의 타당성의 여부까지. 그러한 근대의 담론을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5부 ‘근대인식과 담론분석 - 언어는 권력이다’에서는 비판적 분석을 통하여 서구 근대화 문명론의 함의를 파헤치고 근대의 텍스트를 통해 언어가 가진 정치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차승기의 「동양적 세계와 ‘조선’의 시간」은 일제시대의 문예지 『문장』이라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조선 문인들의 담론을 분석한다. 저자는 이병기, 정지용, 이태준 등의 문인들이 조선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담론을 에피파니적 시간의식과 노스탤지어적 시간의식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전율의 ‘감정’을 당시 문인들이 취했어야 할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이는 전통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을 넘어 에피파니적 역사의 발전으로 확장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노스탤지어적 시간의식에 기초한 심미주의적 전통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점 역시 돋보인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자기동일성의 새로운 원천을 찾는 행위가 무조건적으로 현재의 지배적 관계 속에 적응하도록 만든다는 점은 동의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자기동일성이란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험 또는 사실’이다.1) 자기동일성의 인식이 현재의 고착화된 지배관계가 아닌 과거에 기초한 것이라면 이는 아름다운 과거가 미래에까지 동일하다는 인식으로 확립되어 미래에 대한 발전적 모색의 일환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훈의 「청년의 시대-1920년대 민족주의 청년담론 연구」는 『동아일보』와 『개벽』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근대 ‘청년’이 계몽적․독립적 주체로서 민족의 통합을 이끄는 존재로 거듭나는 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민족주의 청년담론이 사회주의와 신여성 담론에 맞서는 모습을 분석한다. 일제시대에 ‘청년’이란 존재는 단지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한 사람’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근대의 청년은 지식인이자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근대의 엘리트로서의 청년담론을 분석한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제목인 ‘민족주의 청년담론’에 걸맞지 않게 ‘민족주의’적 청년담론의 분석을 조금 소홀히 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저자가 청년담론을 주제로 한 다른 논문2)에서 사회주의 이념의 통시적 전개와 정밀한 자료 분석으로 사회주의 청년담론을 심도 있게 분석한 것과 비교해 볼 때 모자람이 여실히 드러난다.

김현주의 「논쟁의 정치와 ‘민족개조론’의 글쓰기」는 이광수의 텍스트 「민족개조론」을 분석하여 그것의 정치성을 고찰한다. 저자는 이광수의 텍스트를 기존의 논문 혹은 논설로 보는 관점이 아닌 과학적임을 표방한 제안서로 보며 텍스트의 내용을 사회심리학의 논거를 이용하여 심도 있게 비판한다. 허수는 이광수를 합리적 계몽가를 자처한 선전가로 평가하며 이광수 텍스트의 내적 균열을 파헤친 저자의 식견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광수의 텍스트를 세부적으로 조목조목 객관적으로 따져 당시의 변화하는 근대인식 속에 민중을 통제하려는 이광수의 의도를 간파한 것은 이광수의 담론에 대한 비평의 극치라고 언급한다.

허수의 「1920년 전후 이돈화의 현실인식과 근대철학 수용」은 이돈화가 『천도교회월보』,『개벽』 등에 발표한 논설, 논문을 통해 이돈화의 사회와 종교에 대한 담론을 분석한다. 저자는 천도교 이론가이자 계몽적 지식인으로서의 이돈화가 어떻게 종교에서 사회로 관심이 확장되었으며 당시의 조선사회를 종교적 원리로 개조하려 힘쓴 이돈화의 사상을 심도 있게 서술한다. 저자는 이돈화의 난해한 철학을 그의 사상적 토대가 된 쿠로이와 루이코, 이노우에 데쓰지로, 신칸트학파의 이론을 연결시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또한, 이돈화의 철학을 천도교와 연관시켜 서술하여 이돈화의 철학에 영향을 준 철학자들과는 다른 이돈화 철학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부각하였으며, 그와 함께 그의 철학적 관점에서 본 현실인식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물론, 이돈화의 철학을 다른 철학자들의 철학과 비교론적 분석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 이돈화의 현실인식과 철학의 담론의 이해를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류시현의 「일제하 최남선의 불교인식과 ‘조선불교’의 탐구」는 최남선의 조선불교에 대한 인식과 통시적 변화 과정을 분석한다. 이 논문은 최남선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본격적으로 조선불교에 대한 인식을 확립해 나가는 모습을 과거의 연구와는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최남선이 일제의 불교와 다른 조선불교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역설하며 동시에 세계 문화 속에 조선불교 문화를 정립하고자 하는 모습을 서술한다.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에서 일제의 앞잡이로 전락하였다고 흔히 알려진 최남선을 조선불교의 고유성을 고취한 면으로 바라보면서 최남선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긍정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최남선의 불교인식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면서 그의 인식의 토대를 논리적으로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언어의 ‘정치성’에 대한 언급이 적은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930년대 이후 최남선이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제의 징병․징용으로 선도한 것과 같은 정치적 텍스트를 활용한 측면을 다루어 최남선의 담론을 보다 확장하여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최남선의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근대 담론분석의 기준이 되기에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고 평가된다.

‘근대인식과 담론분석 - 언어는 권력이다’의 다섯 논문에서의 담론 분석은 언어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어 근대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개념, 텍스트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주목하여 일제시대의 시대상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담론은 주체가 명명한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가 텍스트나 장르 안에 담긴 요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실행시키고 지지를 유발시키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3) 그런 점에서 5부의 논문들은 근대 담론의 정치성, 특히 언어적인 측면에서의 정치성의 실행을 합리적으로 분석하였다고 평가된다. 물론, 각 논문의 담론분석이 가지는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근대 담론 속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통해 근대를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5부는 근대의 담론분석을 통해 근대를 인식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1) 『네이버 백과사전』
2) 이기훈, 「1920년대 사회주의 이념의 전개와 청년담론」, 『역사문제연구』, 제13호, 2004, pp. 287 ~ 318
3) 이기형, 「담론분석과 담론의 정치학」, 『언론과 사회』, 14권 3호, 2006, pp. 106 ~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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