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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담아낸 인문학 - 상식의 지평을 넓혀 주는 맛있는 이야기
남기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청나라 서태후는 호사스런 음식을 즐기기로 유명했다. 그녀의 저녁 식탁에는 메인 요리만 50개가 넘었고 하루 500근의 고기와 100여종류에 달하는 산해진미가 총동원됐다. 먹는 음식만 봐도 그녀의 성품이 사치스럽고 과시욕이 강한, 그러면서도 식탐이 강하고 자기 절제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음식을 이해하면 한 개인과 가족은 물론, 그들이 속한 사회와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이 음식이 어떻게 유래됐으며, 음식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으며,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등 재미있는 상식을 넓혀주는 맛있는 책이다.

그리고 내가 먹는 음식을 비추어보았을 때 나의 성격은 어떤지, 그리고 우리가족은 어떤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으며, 음식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식도락의 기원을 가족의 탄생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수렵 시절, 가족이 한데 모여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나눠 먹었던 것이 식도락의 시작이다.

'먹는다'는 의미의 식食 자를 써서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어사전에 '식구'란 단어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으로 정의돼 있다.

그러므로 알아 두자. 누구와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가족에 버금가는 인연을 맺는 '소중한 행위'임을....

 

전어는 아주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대표적 생선이다. 조선 실학자 중 한 명인 서유구는 1827년에 쓴 《임원경제지》에서 '워낙 맛이 뛰어나 양반, 서민을 막론하고 돈 귀한 줄 모르고 먹는 생선'이라고 전어를 설명했다. 이 같은 언급은 전어란 이름의 유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돈, 즉 전錢 귀할 줄 모른다 해서 전어錢魚란 이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임원경제지》에 앞서 쓰인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은 전어가 마치 화살촉을 닮았다 해서 전어箭魚란 이름을 붙였다. 한자는 다르지만 둘다 전어란 점은 같다.

사람에 따라 첫맛은 다소 비릿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는 게 전어다. 며느리 말고도 전어 관련 속담이 우후죽순 생겨날 정도로 일품의 맛으로 통했던 게 전어다. '전어 머리엔 참깨가 서 말'이란 속담은 전어의 고소한 맛을 강조한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필자는 천송이 못지않은 '치맥 마니아'다. 이 때문에 천송이가 "눈 오는 날엔 치맥이야"란 대사를 읊었을 때, 개인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더울 때도 좋지만, 추울 때 먹는 치맥의 기쁨은 그 어느 요리에 비견할 수 없다. 시원한 맥주 한잔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치킨 한 조각의 기쁨은 겨울에 더욱 빛이 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치킨, 그 탄생 배경이 정말 슬프다. 헤어진 아빠가 생각날 때마다, 도민준이 한 발자국씩 자기에게서 멀어지려 할 때마다 여지없이 볼을 타고 짠하게 흘러내리는 천송이의 구성진 눈물만큼이나 애잔함이 묻어 있는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1800년대 초반,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흑인들은 백인들이 운영하는 대규모 농장에서 노예로 일했다. 농장 주인인 백인들은 농장 한쪽에서 키웠떤 닭을 잡아 수시로 찌거나 구워 먹었다. 백인들은 살이 많은 닭가슴과 닭다리만 먹고 나머지 날개, 발, 목뼈 등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고된 노동에 배가 고팠던 노예들은 쓰레기통을 뒤져 나머지 부위를 모았다. 하지만 이 부위들은 살이 많지 않아 씹어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기름에 튀기는 방법이었다. 기름에 바싹 튀기면 웬만한 뼈도 씹을 수 있기 때문. 결국 오늘날 치킨 요리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프라이드 치킨'은 남부 흑인 노예들의 배고픔을 달래선 '솔 푸드soul food'였던 셈이다.

 

<별그대>에선 다양한 감정을 마음껏 발산했던 전지현이지만, 영화 <베를린>에선 절제된 연기가 일품이었다. 마읏껏 기쁘게 치맥을 질길지언정, 절대 과식하진 말자. 모든 음식엔 절제가 필요한 법이다. 전지현의 연기처럼.

 

소금은 과거 로마제국에서 군인들 봉급으로 지급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소금salt과 봉급salary은 서로 통하는 단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실제로 'salt'와 'salary'는 소금의 라틴어인 'salarium'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소금을 봉급으로 탄 로마제국 군인들 때문에인지 군인을 의미하는 솔저soldier란 단어도 'salt'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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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야화 - 천년을 떠돌던 역사 속 신비로운 이야기들
도현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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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의 중국인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 화성 같은 다른 별에 살고 있던 사람의 존재를 상상했었다는 사실이 아닐런지요? 비록 지금은 화성에 갈 수 없지만, 훗날 누군가 화성에 가서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 또한 《수신기》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결과가 아닐까요?"

 

"영웅호걸이 필요한 시대는 불행한 시기라는 말도 있사옵니다, 전하."

"하지만 사람이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행이 아닐까?"

 

"아마 그들을 잘 다독이면 마음을 고쳐먹고 착하게 살 거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옵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질은 한 번 형성이 되면 좀처럼 변하지 않사옵니다. 그리고 사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할 뿐,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지요. 애석하게도 소연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탐욕스러우며 거짓으로 가득 찬 존재인지도 몰랐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다고 여기지. 자기와 다른 형태의 인간에 대해 알거나 이해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소연이 패망했다는 사실 그 자체이옵니다. 오호십육국과 남북조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비롭고 부지런하며 검소한 삶을 살았던 황제가 어쩌다 참혹한 최후를 맞았으냐, 하는 것이옵니다. 물론 소연은 정말로 선량한 사람이었사옵니다. 그러나 그 선량함이 오히려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옵니다. 착한 소연은 사악한 후경에게 패매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역설적이지만 그는 선량함의 세계에 갇혀 살았기 때문에, 그 세계 박에 있던 거대하고 위험한 악을 보지 못했사옵니다. 그래서 난생처음 보는 악과 마주치자, 어찌해야 할 줄을 몰라 허둥대다가 속수무책으로 몰락했던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이 점을 명심하셔야 하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이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낙원이 아니라, 온갖 추악함으로 가득 찬 진흙탕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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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ㅣ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1
김경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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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44세에 현직에서 밀려난 후 복귀를 염두에 두고 절치부심하면서 집필한 일종의 '제안서'다. 당시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 상속자의 눈에 들고자 노력한 대목이 곳곳에 엿보인다. 향후 군주의 위치에 오를 젊은 귀족에게 자신의 경험을 집약한 일종의 '군주 가이드북'인 셈이다.

헌정사에서 '당신이 가끔 이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시면'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전직 외교관의 궁박한 처지를 절실히 호소하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로렌초는 《군주론》을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1527년 58세로 사망하고 만다.

그러나 현직에서 퇴출된 초라한 전직관료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작가로 재탄생한다. 《군주론》을 비롯하여 《정략론》, 《전술론》, 《피렌체 역사》와 같은 명저가 은퇴 이후 14년 동안 쓰였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입니다.

 

귀족들은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쳤을 때, 자신들 가운데 한 사람을 추대해 군주로 세우고, 그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펼치려 합니다. 시민들은 더는 귀족들을 견딜 수 없을 때, 그들 중 한사람을 군주로 추대하고 그의 권력을 빌려 자신들을 보호하려 합니다.

 

중국역사의 비조인 사마천은 2,500년 전 《화식열전》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고,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또 그 다음은 백성들을 가지런히 바로 잡는 것이며,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할 때 혹은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 약속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인간이 전적으로 선하다면 이러한 수칙은 수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악하고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 역시 그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오랜 주제인 성선설, 성악설을 《군주론》에 대입시켜 보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고대의 군주들이 반인반수의 괴물 케이론에게 훈육 받았다는 설화를 인용하며, 인간이란 소위 도덕군자와 짐승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이를 모두 이해해야 통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The road to the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는 영어속담처럼, 인간 역사에서 천국을 약속한 자들이 지상에서 구현한 것은 항상 지옥이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 주어진 환경과 제도가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서 개인적 삶의 조건이 충족될 수 있으면 선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남을 속이고 해쳐야 살아남을 수 있으면 악하게 되는 것이다.

 

옥석을 가리는 눈이 있어야 옥을 고를 수 있고, 그릇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는 법이다. 군주가 아첨과 충직한 조언을 구분해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조언을 담을 수 있다.

 

또한 한 때 성공했던 군주가 운에만 의존하고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쇠토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항상 변화를 읽고 따라가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명의 신을 여신이라고 규정하며 젊은 남성처럼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는 부분은 변화와 운명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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