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
조지프 캠벨 지음, 노혜숙 옮김, 한성자 감수 / 아니마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내 아버지 나이는 30대 후반이셨기에 혈기왕성함으로 열심히 운동을 하고 다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다른 승부욕에 뭐든 주장을 맡아서 게임을 주도하셨던 아버지. 그날은 다음날 있을 동문 체육대회를 위해 현지 적응 차원에서 시골 초등학교에서 아버지와 축구공을 주고받으며 운동을 했었다. 한참 어린 동생은 우리 둘 사이를 끼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와 주지 앉자 금세 짜증을 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날씨는 선선하니 해가 저물어 가는 오후였다.

 이제 슬슬 운동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아버지께서 100m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하셨다. 나와 1:1 대결을 하고, 동생이 심판을 봤다. 언젠가 장난을 치고 있는 힘껏 달렸는 얼마 못가 어머니께 목덜미를 붙잡혀 신나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했다. 동생의 시작 소리에 있는 힘껏 달렸고 곁눈질로  아버지가 전력 질주를 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의지 비슷한 것을 느꼈고, 나도 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뒤를 돌아봤는데, 생각보다 한참 뒤에 뛰어오시는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어이없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져서 나도 놀랐고, 뒤따라 오시던 아버지는 더 놀란 표정이셨다. 이제는 엄마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날 잡지 못하리라. 이제 난 애가 아니었다.

 그렇게 키는 꾸준히 컸고, 나이도 열심히 먹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 나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청년기를 20년 가까이 지내고 있다. 가끔 영원히 이렇게 나이 들다 죽음을 맞이하는 걸 상상해 보곤 하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꼰대 아니면, 나잇값 못하는 노인네가 되어 있을 것이 뻔하니까.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고 싶다.

 "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종교와 신화는 그 진위 여부가 중요하기보다는 그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성년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국가마다 혹은 문화마다 그에 합당한 성년식이 있었고, 청년은 어른이 되기 위해 그 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그럼으로 사회의 어른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와 신화는 더 이상 우리에게 정신적 지지대 역할을 해주지 못하게 되었다. 순수의 시대가 지난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정신이 산업의 발전처럼 크게 성장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그 말에 깊게 공감한다. 물질의 발달에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정신은 지지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특히 종교를 믿지 못하는 나 같은 부류의 인간들에게는 더더욱 이 시대는 살기가 힘들다. 현실을 열심히 살고 있지만, 현실을 넘어 삶의 연속성을 갖게 해줄 그 무엇이 없기에 큰 파도가 일면 배는 난파되고 정신을 잃은 체 망망대해를 헤맬 뿐이다.

 "어른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스로 성년식을 치루라. 그리고 모험을 떠나라." 이 책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어른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능력을 혹독한 성년식을 경험함으로써 배우고, 다시 태어나는 거다. 블리스를 추구하라.

"나는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일종의 미신과도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블리스를 따라간다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길에 들어서게 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그들이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블리스를 추구하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서 우주가 당신을 위해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캠벨은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것을 블리스라 말했다. 아마도 이렇게 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올해 집으로 내려오면서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시작하지만, 그 전과는 뭔가 다른 느낌. 이 책을 읽고 내년에는 나만의 성년식을 보내기 위해 길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모험을 잘 하려면 우선 집에서부터 잘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올 한 해는 집에서 누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경험하고 다시 도약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신화 속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신화 속 영웅이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잘 듣고, 관찰하여 원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모험의 숲 속에 던져져 있다.

 "예술가들은 이 세상의 사물을 한데 모아서 원래의 빛을 보여준다. 그 빛은 우리 의식의 빛이며 또한 모든 것을 숨기고 있다. 그 빛을 적절하게 들여다보면 세상이 보인다. 영웅 신화는 그 빛을 환하게 보여주는 보편적인 패턴 중 하나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삶은 영웅의 여정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끊임없이 모험의 영역으로, 새로운 수평선으로 불려간다. 그때마다 우리는 같은 문제를 마주한다. 모험에 뛰어들 것인가? 만일 용기를 내어 모험을 떠난다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도움을 받아 성공할 수도 있고, 아니면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하지만 인생에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 블리스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이제 더는 눈 감지 않으리라. 더 이상 떠미는 대로 끌려가지 않겠다. 똑바로 응시하고, 온전히 느끼며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