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속의 불만 프로이트 전집 12
프로이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고찰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우리의 삶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생존이라는 도박에서 가장 큰 밑천은 생명 자체다. 이 생명이 내기에 걸려 있지 않으면 싦은 빈곤해지고 무력해진다.
환상의 미래
예술은 문화적 요구에 따라 우리가 오래 전에 단념했지만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원망에 대한 대리 만족을 제공하고, 따라서 문명을 위해 욕망을 희생한 사람의 불만을 달래기에는 가장 적합하다.
문명의 실제적인 존재 이유는 인류를 자연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종교의 가르침을 믿으라는 요구가 억지인 까닭은 종교적 가르침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렇게 주제넘은 짓을 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오늘날의 사회에서 새삼스럽게 의문을 제기하려는 시도는 백안시된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이유는 결국 종교적 교리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그 주장의 불확실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확신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료를 기꺼이 제시할 것이다.
인간은 종교없이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과학적 지식은 인간의 힘을 한층 강화해 줄 것이다.
문명 속의 불만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인생의 목적과 의도는 무엇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하기를 바라는가?
대답은 뻔하다. 인간은 행복해 지기를 원하고 그 행복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넓은 의미의 행복은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이고 좁은 의미로의 행복은 강렬한 쾌감을 경험하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 가운데 어느 쪽을 실현하려 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동도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죄책감이 문명 발달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문명의 진보를 위해 우리가 치르는 대가는 죄책감의 고조에 따른 행복감의 상실이다.
인간의 가치 판단은 행복해지고 싶은 원망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자신의 환상을 논증으로 뒷받침 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왜 전쟁인가?
인류를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가?
인간의 증오와 파괴를 열망하는 이상 심리에 저항할 수 있도록 인간의 정신 발달을 통제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오늘날 정의와 폭력은 정반대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의는 폭력에서 생겨난 것이다.
동물계에서 이해 관계가 충돌할 때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인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작은 군집을 이룬 초기에는 누구의 뜻을 따를 것인지 결정해준 것은 강한 근육의 힘이었다. 그러다가 도구의 사용이 근육의 힘을 보안하게 되고 무기가 도입되면서 지적 우위가 야만적인 힘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진화의 과정에서 다수의 약자가 단결하는 형태로 정의나 법으로 가는 길이 열렸으나, 이 또한 거기에 저항하는 개인에게는 똑같은 폭력으로 작용하였다.
개인에서 더 큰 집단으로 힘이 이동함으로써 폭력이 극복되었도 더 큰 집단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구성원들은 감정적 유대로 단결되었다. 그러나 공동체는 처음부터 동등하지 않은 힘을 가진 구성원들로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점차 불평등한 함의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법률은 지배자들에 의해 지배자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 되어야할 법의 지배를 본인들은 벗어나고 싶어한다. 억압받는 구성원들은 더 많은 힘을 얻기위해 법으로 승인 받으려고 하고 지배 계급은 승인 하기를 꺼린다. 그 결과 반란과 내전이 일어나 밥률의 효력이 일시 정지되고 또 다시 폭력으로 문제가 해결되면서 새로운 법의 지배가 확립되는 것이다.
전쟁을 정식 시키기 위해서는 인류의 모든 이해 관계 충돌을 판결할 권한을 가진 중앙 권력기구가 필요 권한을 부여받아야 하나 그 권한을 갖게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공동체를 단결시키기 위해선 감정적 유대가 중요한데 가치관과 이념이 다른 국가간의 사이에 이상주의적 호소만으로는 유대감을 갖기 어렵다.
인간의 본능은 두 가지 이다.
보존과 통합을 추구하는 에로스적 본능과 파괴와 죽음을 추구하는 본능인데 여기에 윤리적인 선과 악의 판단을 섣불리 도입하면 안된다. 인간의 모든 동기는 어느 한쪽 본능만 따로 분리된 상태에서는 작용할 수 없고 두 가지 본능이 혼합된 상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격적 성향을 제거하려고 애써봤자 전쟁을 종식시키진 못할 것이다. 대신 공격적 충동을 전쟁으로 발산할 필요가 없도록 애로스적 본능을 이용하여 그 충동의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리도록 애써야 한다. 인간 사이에 감정적 유대가 생겨나도록 부추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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