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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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주 간 책 한권 제대로 못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봐야할 잡지도, 봐야할 책도 많은 지라 그러려니 했더니, 한번에 손에 잡고 있던 책들이 많았다. 이틀만에 <나는 왜 불온한가>를 시작으로, <미학 오디세이 1>, <용의자 X의 헌신>까지 줄줄다 완독해버렸다. 


  씨네21을 보면서 마지막 페이지는 나에게 사회에 관한 문제들을 상기시켜줬었다. 그러나 진중권 외에는 글쓴이의 이름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라니. 한겨레와 씨네의 연관성을 깨닫게 된 것도 그 칼럼이었는데. 어찌되었든 그가 쓴 글들이 엮인 <나는 왜 불온한가>, 이 책을 이제 다 읽게 되었다.

  예상했던 만큼만 나에게 충족이 되었다. 내가 몰랐던 사회내용은 잠시 미루어 두더라도, 내가 아는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기대 이상도 기대 이하도 아니었다. 스스로와의 성향이 다른건 어찌되었던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성향이란 것 자체가 아직 정립되지도 않은 상태인 나는 그런 '불편'은 없었다. 내가 좋았던 내용도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계시고, 내 주위에도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교회와 기독교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거나 말을 하려면 주저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 자신의 배경지식이 확고하다면 그러한 주저함은 금방사라질지 모른다. 작년 즈음, 부산으로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여성이 다가와 조그만 팜플랫을 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말 그대로 교회 나오라는 말. 그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진 모르겠지만, 예수의 진실에 관한 어떤 아는 내용을 말했고, 그 부분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질문했더니 대답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보고, 인텔리, 같단다. 어떤 의미의 인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 학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잘난 입으로 말씀하신다. 예수는, 머리로 아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고. 기도하면, 내 곁에 나타나신다고. 그러면서 시간 나면 학교 내 교회동아리에 방문하란다.

  왜 일까. 교회다니는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 한적은 없는데, 왜 난 교회가 싫어 졌을까. 그 중에 하나가 아마 '예수천국불신지옥'이 아닐까. 학원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박주영은 골을 넣고 기도를 하는데, 그게 과연 정당한 일일까. 그 기도는 예수가 자기를 선택했다는 데에 대한 감사인데, 그러면 득점을 당한 팀들은 예수가 버린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 초기 가르침이 그런 건가. 그렇다면 이런 대답이 나올지 모른다. 기도가 부족했다, 어이 이 사람들아, 예수가 무조건 기도 많이 하면 선택해줄꺼라고 말했던가, 으응?

  얘기가 빗나가고 있지만, 예수를 믿는(믿었던) 김규항은 한국 교회의 말도 안됨을 말한다. 그걸 그는 군사독재시절의 파시즘과 연결을 시킨다. 예전엔 몰랐는데 요즘은 한국사회에 나타나 있는 파시즘의 흔적을 이제는 조금은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단지 '한국적인 것'이라고만 느끼고 있었지, 그 배경이나 무조건 '한국적인 것'이 옳다 라는 생각을 고쳐먹고 있다.

  사실 많이 읽진 않았지만 진중권이나 김규항의 글을 읽다보면 이 사회는 그리 좋은 사회가 아니다.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아직도 박정희는 종교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알꺼라 믿는다. 특히 노동자모임이나 잡지에 쓴 김규항의 글을 그들이 읽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왜 아직 사회는 그대로인가. 왜 아직도 민주노동당에서 나온 후보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관계를 좀 더 고찰해보고 싶어진다. 나 스스로가 '사회주의'를 표명하진 않지만, 부당한 것은 싫다. 아직은 내가 태어난 땅에 난 살고 싶어진다.

 

  내가 한가지 마음에 안드는 글이 있었다.

 



  ['상업적 매매춘'에 관한 유일한 진실] 이란 글 속에 이런 글이 나온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하고 싶지 않은 상대와 섹스하지 않고도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세상에누가 제 존엄을 팔아 살겠는가?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결혼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확보하는 일이 중산층의 상식이 되고, 결혼이라는 게 경제적 능력을 가진 상대에게 장기간의 독점적 성적 서비스(와 가사,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이 된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상업적 매매춘'이니 뭐니 경멸할 수 있는가?.."

  나는 우선 대부분의 한국남성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고싶다, 아니, 여자 혹은 여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 내가 가끔 여자에 관한 발언을 하면 여자친구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특이한 사람이라고,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않는게 현실이라고. 정말 그런가. 내가 어떤 여성이 억압받는 모습을 자주 본 것도(특히 가정내에서) 아니고, 투철한 페미니즘 정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난 정말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고, 이 사회에서 (남성이)여성에게 요구하는 것들 중 대부분이 남성위주의 사고에서 나왔다고. 힘들겠지만, 그걸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결혼도 한 집안과 집안이 아니라, 일대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이며, 그것은 동등해야 한다고. 누가 누굴 지배할 수도 없고, 그 서로는 정말 진심으로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두 사람 사이의 섹스도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며, 남성의 성적욕구 충족적인 면만 중요한 게 아니라, 여성의 성적욕구 충족도 남성이 해소해줘야 하며, 그걸 서로가 맞춰줘야 하는 것이라고(쉽게 얘기해서 남자 꼴릴 때만 하면 안된다).

  그러나 김규항은 그렇게 보질 않나 보다. 아직 사회는 그렇지 않나 보다. 성적욕구에 눈 붉힌 남성만 있는게 아니라, 그걸 사창가가 아닌 집에서도 여전히 비슷한 매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간의 독점적 성적 서비스와 (가사, 육아 서비스)라고 했는데, 성형수술을 해서까지 중산층에 들어간 사람들이 가사, 육아 서비스 를 할 것 같은가? 무언가 (김규항이 좋아하는 말인) 계층이 섞여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하위층이 중산층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번 돈 모두를 성형수술에 붓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들에게 그런 일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할텐데.

  난 믿고 싶다. 한국남성 대부분이 변하고 있다고, 내가 잘났다는게 아니라, 내 생각처럼 가진 이들이 많고 그걸 당연히 여기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건 남자만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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