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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크레마 기기 사용자여서 행사할 때 이북 10년 대여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기다리던 작품을 만나 신이 나서 책을 펼쳤고, 눈물을
머금고 완독을 포기했습니다. 제가 조금 예민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중간에서 포기한 그날 밤엔 깊은 빡침과 억울함으로 잠도 설쳤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중간중간 글이 앞뒤가 맞지 않고 쇼스타코비치가 과연 이런 생각을 했을지, 줄리언 반스가 이렇게 횡설수설을 했을지 고개가 갸우뚱하는 부분들이 꾸준히 나타났고 이에 대해 애써 찾아보면
어김없이 오역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번역을 하다보면 영어 단어와 문장의 중의적 해석이 물론 있을 수 있는데 번역자가 이 작품을 조금만 더 전체적으로
통찰했다면 더욱 적확한 번역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숙어도 좀더 찾아보면 단어 그대로가 기계적으로
조합된 그 뜻이 아님을 알았을 겁니다. 솔직히 요즘 공부 잘하는 영문학과 1학년도
이렇게 해석해 놓지 않을 겁니다. 저는 저 박사 학위를
가진 번역자가 번역하지 않았고 탈고도 하지 않았다는 강한 의심(거의 확신)이 듭니다.
특히 제가 심각하게 느낀 문제는 줄리언 반스가 작품 속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쇼스타코비치가
온전히 전달이 안된 것
같다는 것입니다.
자주 나타나는 아이러니와 묘한 반어적 표현들이 기계적 해석, 오역 때문에 그 뉘앙스를 살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원래의 의미를 왜곡해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저는 줄리언 반스가 정교하게 계산한 쇼스타코비치의 비겁한 중얼거림 하나에도 시대와 예술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었을 거란 생각에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한거죠.
솔직히 영어를 못해도, 원서와 대조를 보지 않아도 번역된 한국어 텍스트만로도 앞뒤가 안
맞고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몰입이 힘듭니다. 편집자는 교정 보면서 이런 문장들이 정말 이상하지 않고 다 이해가 되서 인쇄를 넘긴 걸까요? 저는 정말 묻고 싶네요.
그냥 정말 단순하고 쉬운 예만 들어보면…
벌레들은 교묘하게도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만 골라서 물었다. 모기
덕분에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피부에 와 닿고 그에게서 카네이션 향이 나게 해주는데, 그가 어떻게 모기에게
손톱만큼이라도 불만을 품을 수 있었겠는가?
-> 이거 저만 이해 못한 것인가요? 러시아 모기는 물면 카테이션 향이 나나요? 줄리언 반스가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인가요? 이해가 안 돼서 찾아보니 원문의 저 문장 중간에는 카네이션
추출물로 만들어진 로션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통째로 누락했네요. 저는 자꾸 이런 문장들에서 이게 뭔 소리야... 굵적이게 되어 작품에 빠져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정도 분량의 책에서 독서가 자꾸 이런 데 걸려 넘어지면 안되잖아요,
그러나 결국 그들은 이 지휘봉의 황제가 믿는 대로 믿게 되었다. 즉, 채찍질을 당해야만 연주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이 마조히스트적인 무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가끔씩 서로 비꼬는 말을 던지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지도자의 고귀함과 이상주의, 목적의식, 쓰레기로 버려져 책상 뒤로 날려가버리는 자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지도자를 존경했다.
-> 난데 없이 '쓰레기로 버려져 책상 뒤로 날려가버리는 자들'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궁금해 찾아보니
원문은 those who just scraped and blew behind
their desks 즉 현을 뜯고 관을 부는 연주자들의 창의적 오역이었더라고요. 이거 정말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한마디로 '그저 뜯고 불었던 평범한 자들'이라는 비하의 의미인데 맞는 해석은 커녕 원래 그 문장이 가진 묘하게 비꼬는 맛마저 싹 다 없앴어요!
게다가 저 번역 문장 비문이잖아요 ㅠㅠ 찾아보니 원문에서는 고귀함 / 이상주의 / 목적의식 / 넓게 보는 능력을 존경한다고, 네 개의 같은 성격의 목적어를 나열해 한 번에 이해하기 쉽게 씌어 있네요. 네, 반스는 글을 잘쓰는 작가잖아요.
제가 읽은 중반부까지 이런 오역과 아리까리한 문장들이 곳곳에 꾸준히 포진해 있었고 중간중간 읽기를 멈추고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 골똘히 추리해 보아야 했습니다. 이걸 사소한 오역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전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당시 예술관이나 시대와의 불화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특히 작가가 정교하게 계산한 Sarcasm)에서의 오역들은 줄리언 반스가 이 작품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쇼스타코비치와 거리가 있기에 도무지 변명이 안됩니다.
역사상 실존했고 다양한 평가가 있는 예술가이기에 줄리언 반스가 느낀 무게도 컸을테고 오랜 기간 다각도로 조사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다듬었겠죠.
저는 그런 줄리언 반스가 결코 쓰지 않았을 이상한 문장들을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서 책장을 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대한 작품이고 그래서 다 읽지 못해서 너무 속상합니다.
부디 번역자와 편집자가 고민하셔서 작가에 대한 조금의 존경심이라도 있다면
정련된 한국어 텍스트는 바라지도 않고, 명백한 오역만이라도 싹 고쳐서
개정판을 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